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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 [투시] 공간투시 - 의식적인 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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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2,264회 작성일 16-08-0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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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725, Vote: 16, Date: 2005/10/20 23:21:22 
글 제 목 [투시] 공간투시 - 의식적인 투시
작 성 자 문성호




제 4 장 

공간투시 - 의식적인 투시 




우리는 이것을 보통의 육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는 것이나 아예 눈앞에 보이지 않는 사건이나 광경을 보는 능력이라고 정의한 바가 있다. 이러한 예는 너무나도 많고 다양하여 이를 좀더 상세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들 다양한 경우들을 다 포괄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어떤 특정 분류법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편리한 방법 중의 하나는 의식적인 공간투시와 무의식적인 공간투시, 그리고 그 중간 형태의 것으로서 반(半)의식적 ―묘한 표현이긴 하지만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공간투시로 대략적으로 나누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숙달된 투시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 능력은 어떻게 작용하며 또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써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부분적이고 숙달되지 않은 투시의 다양한 경우에 대해서도 좀더 잘 이해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먼저 의식적인 투시에 대해서 논해보기로 하자. 



아스트럴 투시력에 대한 지금까지의 설명에 비추어본다면 그것을 완전히 소유한 사람에게는 그가 이 세계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무엇이든 다 볼 수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가장 은밀한 곳까지도 그의 눈앞에는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것을 가리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시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에게 아스트럴체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그는 이 지구상에서는 아무 어려움 없이 어디라도 갈 수 있고 구경할 수 있다. 실제로 곧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대개 아스트럴체를 전혀 움직이지 않고도 가능한 일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관찰하는 데에 사용되는 초육체적인 투시의 방법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예컨대 이곳 영국에 있는 사람이 인도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지극히 세밀한 부분까지 알 수가 있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 현상을 설명하는 매우 기발한 가설이 제시되어 있다. 즉, 모든 물질은 빛보다 훨씬 더 섬세하기는 하지만 어느 면에서 광선과 비슷한 방사선을 모든 방향으로 끊임없이 방사하고 있으며, 투시란 이 섬세한 방사선을 통해서 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경우에 거리는 투시에 아무런 장애요소가 되지 않으며 중간에 놓인 장애물은 이 방사선이 투과할 수 있으며 보통의 광선이 그렇듯이 이 방사선들은 무한한 방향으로 서로 교차하면서도 서로 교란되지 않는다.



이것이 투시의 정확한 원리는 아니지만 이 이론의 전제는 대부분 꽤 사실에 접근해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물체는 모든 방향으로 방사선을 방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보다 높은 차원에서이기는 하지만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가 형성되는 것도 바로 이 방법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주제에서 약간 언급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피하겠다. 곧 설명하겠지만 신비현상 역시 이 방사선들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 에테르 파동(물론 이것이 이 방사선의 실체이다)들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투시하는 수단으로서 이용하는 방법에는 실제적인 난점이 있다. 중간에 가려 있는 물체들은 완전히 투과적이지는 않으며, 투시자가 보려고 하는 장면의 대상 역시 최소한 그 정도의 투과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심한 혼란이 일어날 것이 명백하다. 



에테르 파동이 아니라 아스트럴 파동이 감지될 경우에 작용하게 될 새로운 차원은 이 난점 중의 일부를 제거해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새로운 혼란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투시를 이해한다는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이 방사선에 대한 가정은 무시하고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서 투시하는 방법에 눈을 돌려보자. 그 방법은 다섯 가지가 있으며 그 중 네 가지는 진짜 투시의 종류에 속하며 나머지 한 가지는 사술(邪術)의 일종일 뿐 전혀 그러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이 마지막 것부터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1. 자연계의 정령의 도움을 받는 방법 




이 방법은 실험자쪽의 심령능력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그를 위해서 조사를 수행해줄 아스트럴계의 어떤 존재를 불러오는 방법만 알면 되는 것이다. 즉, 그것을 유인하거나 혹은 반대로 강압적인 힘으로 불러내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수행자는 아스트럴계에 있는 자신의 조수에게 기도를 하거나 공물을 바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설득하거나, 아니면 고도로 개발된 의지력을 강력히 구사함으로써 그가 도와줄 것을 강요할 수가 있다. 



이러한 방법은 동양(여기서는 흔히 자연의 정령을 이용한다.)과 고대 아틀란티스에서 널리 행해져온 것으로서, 아틀란티스에서는 ‘검은 얼굴의 주(主)’가 이러한 목적을 위한 고도로 전문적이고 매우 해로운 종류의 인공적 엘리멘탈을 이용했다. 현대에 와서는 심령강신술 모임에서 이와 비슷한 종류의 방법으로 정보가 얻어졌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동원되는 심부름꾼은 아스트럴계에서 다소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최근에 죽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다만 여기서도 그것은 어떤 사람의 죽은 친척인 양 장난을 치는 착한 정령인 경우가 간혹 있다. 어떤 경우이든 간에 이미 말했듯이 이러한 방법은 결코 투시가 아니며 사술(邪術)인 것이다. 이것을 여기에 언급한 것은 다만 독자들이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경우를 다음의 범주들 속에 포함시키려고 애쓰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2. 아스트럴류(流)를 이용하는 방법 




이것은 일부 신지학 문헌 속에서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현상들을 포괄하기 위해서 약간 모호하게 사용되는, 그리고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다른 현상들에 종종 동원되는 말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실제로 하는 일이란 아스트럴 질료 속에 어떤 흐름을 형성시킨다기보다는 그 속에 일종의 임시 전화선을 개설하는 것이다. 



설사 내가 그만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아스트럴 차원의 물리학에 대해 장황히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하려는 말은 다만 아스트럴 질료 속에 명확한 통신선을 형성시킴으로써 그 한쪽 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있도록 파동을 전달해주는 전화선의 역할을 하게 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한 선로는 아스트럴 질료 공간 속에 직접 사출(射出)되는 것이 아니라, 연이어진 아스트럴 입자들의 대열로 하여금 요구되는 성질의 파동을 전도하는 전도체를 이루게끔 하는 어떤 작용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예비작업은 두 가지 방법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즉, 하나의 선로를 이룰 때까지 입자에서 입자로 에너지를 전달시키는 방법과, 아니면 전체 라인에 일시에 작용할 수 있는 고차원계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 후자의 방법은 상당히 높은 차원의 지식(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능력)을 개입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수행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이런 방법으로 선로를 구성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용도를 위해서 그것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은 그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능력으로써 그보다 훨씬 더 쉽고 안전하게 투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전한 아스트럴 차원의 단순한 작업도 수행하기는 차라리 쉽지만 설명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막대자석의 성질과 어딘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의지력을 통한 노력에 의하여 자극화(磁極化)라고 말할 수 있을 그런 아스트럴 원자의 평행한 선로들을 투시자로부터 투시하려고 하는 광경 사이에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향받은 모든 원자들은 정확한 평행선을 지키면서 일정 시간 그대로 유지된다. 그리하여 그것은 투시자가 들여다볼 수 있는 일종으 l임시적 튜브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그것을 가로지르는 강한 아스트럴류가 발생하면 이 통신 선로가 혼선되거나 아예 끊어져버리는 것조차 발생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원래 방사된 의지력이 매우 강하다면 이런 일은 단지 간혹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아스트럴류’를 통해서 보이는 먼 곳의 장면은 많은 면에서 망원경을 통해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의 모습은 대개 뒷좌석에서 바라보이는 무대 위의 인물처럼 매우 작게 보인다. 그러나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똑똑하게 보인다. 때로 이 방법을 통하여 그 장면뿐만 아니라 말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투시능력의 필연적인 결과라기보다는 부가적인 능력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경우에 대개 투시자는 자신의 육신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을 향해서 그의 아스트럴체나 혹은 자신의 어느 부분도 방사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는 다만 아스트럴 망원경을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따라서 그가 먼 곳의 광경을 투시하고 있을 때에도 어느 정도 육신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그가 투시행위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 광경을 말로써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줄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의식은 아직도 분명히 이쪽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그 이점과 동시에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 또한 물질계에서 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크게 비슷하다. 예를 들면 투시자는 그 시각을 이동시킬 수가 없다. 말하자면 그의 망원경은 넓히거나 변동시킬 수 없는 일정한 가시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장면을 한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갑자기 통째로 바꾸어 반대편으로부터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에게 아직도 여력이 있다면 사용하고 있는 망원경을 버리고 다시 대상을 좀 달리 바라볼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망원경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아스트럴 투시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그가 그 장면을 모든 방향으로부터 바라볼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가 어느 정도 가까운 곳에 있는, 말하자면 그의 아스트럴 시야 내에 있는 대상을 정상적인 투시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사실이다.k 그러나 수백, 혹은 수천 마일씩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매우 달라진다. 아스트럴 투시는 사차원의 이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차원에서도 여전히 공간(속의 일정지점)이라는 개념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히 사차원 능력의 사용에 한계를 가하는 잠재요소가 된다. 우리가 지닌 삼차원 공간의 시야로는 사각형과 같은 이차원(평면)적 형상 내부의 모든 지점을 단번에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사각형은 육안에 보이는 거리 내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지 한 차원만 추가되어도 런던에 있는 사람은 약간의 노력으로 캘커타에 있는 사각형을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다. 



아스트럴 투시의 상(像)은 사실상 일종의 관과 같은 것을 통과함으로써 제한받게 되면 유사한 경우에 육안에 보이는 상이 가지는 한계와 동일한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기만 한다면 그 상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찰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오라, 곧 그 사람의 감정, 그리고 그가 품은 생각의 상당 부분을 드러내 보여준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이런 형태의 투시는 만일 그들이 아스트럴 튜브의 출발점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물체―의지력을 집중시키기에 용이한 초점―를 지닌다면 훨씬 더 쉽게 수행될 수 있다. 그러한 초점으로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것은 수정구이다. 수정구에는 심령능력을 진작시켜주는 성질이 있다는 부가적인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물체도 사용된다. 이에 대해서는 반의식적인 투시를 논할 때 좀더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생길 것이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아스트럴류 형태의 투시와 관련해서도 일부 심령능력자 중에는 메스메리즘 상태에 있지 않을 때는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경우의 특이한 점은 그러한 심령능력자 중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메스메리즘에 의해서 육신에서 해방된 사람이 스스로 망원경을 만들어내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메스메리즘을 거는 사람이 망원경을 만들어내고 메스메리즘에 걸린 사람은 단지 그것을 들여다볼 수만 있게 되는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 메스메리즘에 걸린 사람은 물론 스스로 튜브를 만들어낼 정도로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메스메리저는 그만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투시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도움의 필요도 없이 혼자서 자신의 튜브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만들어진 튜브는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 망원경의 또 다른 성질을 지니기도 한다. 즉, 대상을 실물 크기까지 확대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대상은 어느 정도로는 확대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대범위는 보통 아스트럴 튜브의 크기에 의해서 제한되므로 전체 광경은 그저 작은 활동사진과도 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 방법에 의해서 대상이 실물 크기로 보이는 드문 경우에는, 그에게 전혀 새로운 능력이 깨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날 때는 그것이 혹시 다음의 범주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를 주의 깊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3. 상념체의 투사에 의한 방법 




이 투시법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앞의 것보다 조금 더 진보된 단계의 능력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멘탈 차원에 대한 지배력을 다소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지학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상념이 그것의 고유한 차원계(멘탈계) 안에서, 그리고 많은 경우에 아스트럴계 안에서도 또한 다소간 형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이 지금 어떤 장소에 있다고 강력하게 상상을 하면 그 생각에 의해 형성된 상념체는 그 사람을 닮게 되며, 바로 그 문제의 장소에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본질적으로 상념체는 멘탈 차원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매우 많은 경우에 그것은 그 주변에 아스트럴 차원의 물질 또한 끌어들이며, 그로 인하여 그 형체가 훨씬 더 용이하게 투시되는 것이다. 실제로 상념체를 보내는 사람이 마음속에 그린 대상의 눈에 그것이 목격된 사례가 많이 있다. 이것은 필시 그러한 상념을 보낸 사람으로부터 방사되는 무의식적인 메스메리즘의 영향력 때문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상념체 속에는 염원을 보낸 사람의 의식은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대개 상념체는 일단 그로부터 방사되면 그와는 전혀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과 정말 완전히 관계가 끊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어떤 인상을 받아들일 가능성에 관한 한 실질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세 번째의 형태의 투시법은 새로이 만들어진 상념체를 통해서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그것과 연결되어 있고 또 그것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이 경우 그러한 인상은 아스트럴 선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명되는 파동을 통해서 생각하는 사람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런 형태의 투시가 완벽하게 행히진 경우에는 마치 투시자가 자신의 의식의 일부분을 상념체 속으로 방사하여 그것을 일종의 관측소처럼 사용하는 것과도 같이 보인다. 그는 마치 자신의 상념체가 있는 자리에 자신이 직접 서 있는 것만큼이나 잘 볼 수가 있다. 

그가 투시하는 대상은 앞의 경우처럼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것처럼 실물 크기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투시의 각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런 형태의 투시에는 앞의 경우보다 더 빈번히 투청을 수반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 대신 투시 대상이 품은 상념과 의도에 대한 일종의 멘탈 지각이 어느 정도 생길 것이다. 



투시자의 의식은 여전히 육신 속에 있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될 수만 있다면 (투시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말하고 듣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상념의 집중이 깨어지면 투시되던 광경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며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념체를 만들어 내어야만 한다. 수련이 없는 사람에게 이런 종류의 투시가 다소간 완전히 나타나는 경우는 앞의 형태의 경우보다는 당연히 드물다. 왜냐하면 이것은 멘탈 차원의 능력을 요구하고 또 사용되는 힘이 일반적으로 더 미묘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4. 아스트럴 비행에 의한 방법 




여기서부터 우리는 투시자가 더 이상 육체 속에 머물거나 육체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지 않고 그가 관찰하는 광경 속으로 완전히 이동하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투시를 접하게 된다. 물론 숙달되지 않은 투시자들에게는 이것이 지금까지 설명한 방법보다 더 큰 위험을 안고 있지만 그래도 이것은 그에게 가능한 가장 만족할 만한 형태의 투시법이다. 그 이유는 다섯 번째 제목에서 소개될 방법은 특별한 수련을 거친 사람들 외에는 할 수 없는 훨씬 더 고차원적인 형태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방법의 경우에는 사람의 육신은 수면이나 트랜스 상태에 들어간다. 따라서 투시가 진행되는 동안은 신체의 기관들을 사용할 수가 없으므로 목격되는 광경의 설명이나, 그에 대한 세부적인 질문 등은 투시자가 몸속으로 돌아온 후까지 보류되어야 한다. 그러나 투시되는 장면은 훨씬 더 완전하고 생생하다. 그의 앞에 벌어지는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광활한 아스트럴계의 울타리 내에서는 어디든지 마음대로 이동할 수가 있다. 그는 느긋하게 아스트럴계에 거주하는 존재들을 관찰할 수 있으므로 광대한 자연령(Nature-spirits)의 세계(전설에 나오는 요정의 세계는 그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인)와, 저급한 천신들의 세계까지도 그의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또 눈앞의 광경 속에 자신이 직접 뛰어들 수도 있는 커다란 이점이 있다. 즉, 아스트럴계의 다양한 존재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진기하고 흥미로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에 더해서 만일 그가 자신을 물현(物顯)시키는 방법을 안다면(이것은 일단 그 비결만 터득하면 그에게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물질계의 사건에도 끼어들 수 있고 멀리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으며 먼 곳에 있는 친구의 눈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 



또 그는 자신이 구하는 것을 찾아다닐 수 있는 능력도 가지게 된다. 앞에서 설명한 종류의 투시법을 통해서는 실제로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거나, 혹은 탐흔능력의 경우처럼 그것과 물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어떤 것을 만짐으로써 그것과 영교가 맺어진 사람이나 장소밖에는 찾을 수가 없다. 세 번째의 방법에 의하면 어느 정도 이동이 가능하지만 매우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면 그 과정은 복잡하다. 



그러나 아스트럴체를 이용하면 투시자는 어떤 방향으로나 사뭇 자유롭고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예컨대 지도 위에 나와 있는 어떤 장소든지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그 장소에 대한 사전지식이나, 그것과 영교를 맺게 해줄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또한 공중으로 높이 떠올라 자신이 찾고 있는 곳을 조감하여 그 면적과 해안선, 전반적인 지형 따위를 정찰할 수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앞의 어떠한 경우보다도 그 능력과 자유자재함은 실로 모든 면에서 훨씬 더 크다. 



이 능력을 완전히 소유한 경우에 대한 좋은 예가 독일의 작가인 융 스틸링이 감수하고 크로우 부인이 쓴 『자연계의 이면(The Night Side of Nature)』(p.127)에 소개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미국 필라델피아 부근에 살았다고 하는 한 투시자에 관한 것이다. 그는 수줍어하는 성격에 말수가 적었으며 신중하고 자비롭고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가 법적으로 결코 당당하지만은 않은 듯이 보이는 모종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 외에는 그의 신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에 대해서 기이한 이야기가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선장의 아내(그녀의 남편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항해하고 있었고 오랫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다.)나 남편이 무사한지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 사나이에게 고민을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그녀가 구하는 정보를 가져올 동안 잠깐 실례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앉아 기다리게 해놓고 내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는 그가 이 일을 잊어버리지나 않았는지 조바심이 나서 살금살금 문으로 다가가 안을 엿보았다. 놀랍게도 그녀는 그가 소파에 마치 죽은 사람처럼 꼼짝도 않고 누워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물론 그녀는 그를 방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돌아와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남편이 편지를 보낼 수가 없었던 것이며 지금은 런던의 어느 다방에 있는데 곧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의 말대로 남편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부인이 그에게서 들은 대로 남편에게서 갑자기 소식이 끊겼던 이유도 그가 말해준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녀는 그가 말한 나머지 것도 진실인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여기서도 그녀는 만족했다. 남편은 그 마술사를 보자마자 그를 언젠가 런던의 찻집에서 만난 적이 있으며 아내가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은 무엇 때문에 그동안 편지를 못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덧붙여서 그것은 미국으로 출항하기 바로 전날 밤이었는데 그 후 군중 속에서 그 낯선 사람의 모습을 놓쳐버렸으며 그 이상은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융 스틸링은 그의 이야기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는 그가 정말 이 이야기의 진위를 밝힐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물론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일들은 수없이 많이 있으므로 그것이 사실인지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투시자는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계발했던가, 아니면 우리 신지학의 대부분의 정보가 나오는 근원이 아닌 다른 계보를 통해서 그것을 배웠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경우에는 학생들 간에 그런 식으로 쌍방간에 확실히 증명될 수 있는 그런 능력이나 소위 ‘신비현상’이 될 수 있는 것을 과시하는 것을 금하는 규율이 엄격히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율이 매우 현명한 것임은 우리 신지학회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능력을 잠시라도 노출시켰을 때 뒤따르는 참혹한 결과를 통해서 모두 알고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원조자』라는 제목의 나의 소책자 속에서 위에 소개한 이야기와 거의 똑같은 현대의 사례들을 몇 가지 소개해 놓았다. 그런 식으로 멀리 있는 친구들 앞에 자주 나타나곤 하는 내가 잘 아는 한 여성의 경우가 스테드 씨의 『진짜 유령이야기(Real Ghost Stories)』(p.27)에 소개되어 있으며, 앤드류 랭 씨는 그의 책 『꿈과 유령(Dreams and Ghosts)』(p.89)이라는 책 속에서 포츠마우스에 있는 클리브라는 사람이 런던에 있는 젊은 아가씨 앞에 두 번씩이나 일부러 나타나서 그녀에게 위험을 경고해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런 종류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파고들려고만 한다면 그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아스트럴 방문을 하는 것은 평소에는 그런 능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가 죽음이 가까워서 법칙이 약간 느슨해지는 때에 종종 가능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예는 다른 경우들보다 그 실례가 많이 있다. 앞에서 말한 앤드류 랭 씨의 책 100페이지에 나오는 한 가지 좋은 사례를 간추려보겠다. 이것은 저자 자신도 “이처럼 사실을 입증해 줄 훌륭한 증거를 가진 사례도 흔하지 않다.”고 말한 것 중의 하나다. 




로체스터에 사는 존 고페의 부인 메리는 오랜 병고에 시달리던 끝에 그녀의 집에서 9마일 떨어진 서부 몰링에 있는 친정아버지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죽기 전날 그녀는 보모에게 맡겨두고 온 자신의 두 아이들을 매우 보고 싶어 했다. 그녀는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병이 깊어 있었는데 새벽 한시에서 두시 사이에 트랜스 상태에 빠졌다. 그날 밤 그녀를 간호하고 있었던 터너라는 이름의 과부는, 그녀의 눈이 치켜떠진 채 고정되고 턱은 벌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터너 부인은 손을 그녀의 입에 갖다대어 보았지만 숨을 쉬고 있는 기미를 느끼지 못했다. 부인은 그녀가 실신한 것으로 생각하고 죽지나 않았는지 걱정했다. 

다음날 아침 죽어가는 여인은 친정어머니에게 “저는 간밤에 잠들었을 때 애들하고 함께 있었어요.”하며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로체스터에 있던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과부인 보모의 말로는 그날 새벽 두시 조금 전에 메리 고페와 비슷한 형체가 문이 열려 있는 옆방(큰아이가 자고 있던)으로부터 나와 작은아이가 자고 있는 그녀의 침대 곁에 한 십오 분쯤 서 있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눈과 입을 움직였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보모는 결코 잠을 자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날은 일년 중 가장 낮이 긴 기간 중이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 앉은 채로 그 유령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다리의 시계가 두시를 알리는 종소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조금 후에 그녀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묻노니,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유령은 사라졌다. 그녀는 옷을 껴입고 뒤를 따라갔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보모는 그 유령과 함께 있을 때보다는 그것이 또다시 나타날 것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 후에는 그녀는 집안에 있는 것이 무서워서 바깥에서 새벽 여섯 시까지 어슬렁거렸던 것이다. 아침이 되어 이웃 사람들이 일어나자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했고 물론 그들은 그녀가 꿈을 꾼 것이라고 일축했다. 물론 그녀는 그것을 부인했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그러다가 서부 몰링으로부터 그 이야기의 반쪽 부분이 전해지고 나자 사람들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주목할 만한 상황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그들을 의식적으로 방문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잠으로부터 좀더 깊은 트랜스 상태로 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의 문헌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많은 비슷한 이야기들 중에서도 여기저기서 이와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똑같은 형태의 두 가지 다른 이야기가 F. G. 리 박사의 책에 나와 있다. 죽어가는 어머니가 아이들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다가 깊은 잠에 빠진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고 돌아와서 그 이야기를 한다는 이야기와, 이집트에 있는 어머니가 죽어가면서 토퀘이에 있는 자식들 앞에 나타나 다섯 아이들과 보모의 눈에 백일하에 목격된다는 이야기이다. (『초자연 현상의 일별(Glimpses of Supernatural)』 제2권, p.64) 



또 다른 책의 이야기로는, 칵커마우스에서 죽어가고 있던 한 퀘이커교의 아낙네가 환한 대낮에 세틀에 있던 세 자녀 앞에 분명히 나타나 그들이 알아보았다는 것이며 나머지 줄거리는 위의 이야기와 거의 동일하다. (『황혼의 일별(Glimpses of Twilight)』 p.94) 



이러한 사례들은 메리 고페의 경우보다 덜 알려져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것이 인용된 작품의 명망 있는 저자들이 확보한 증거에서 보는 것처럼 그 권위는 거의 그에 못지않게 밑받침되어 있는 것 같다. 이 네 번째 형태의 투시력을 완전히 갖춘 사람은 이미 언급된 것 외에도 많은 큰 이점을 가지게 된다. 



지구상의 모든 아름답고 유명한 곳을 힘들이지 않고 돈 없이도 가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약 그가 학자라면 세계의 모든 도서관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해보라! 과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자연계의 감추어진 온갖 화학반응들이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다면, 혹은 철학자에게 생과 사의 크나큰 신비의 작용이 이전보다 훨씬 더 확연히 드러난다면 그것은 또 어떨까? 



그에게는 이 지상세계를 떠난 사람도 더 이상 죽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있고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종교의 많은 개념들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의 문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보이지 않는 원조자들의 일원이 되어 진정으로 큰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투시는, 그것이 아스트럴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수행자에게는 하나의 크나큰 은혜이다. 



물론 그것은 위험도 안고 있다. 특히 미숙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온갖 종류의 사악한 존재들이 그를 위협하여, 그것을 용감하게 대적할 용기를 잃어버린다면 그를 공포 속에 몰아넣거나 해칠 수도 있다. 보이는 것에 대한 모든 종류의 속임수와 오해와 오판의 위험이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위험은 독단에 빠짐으로써 자신은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상식과 약간의 경험만 있으면 이런 것들로부터 쉽게 보호받을 수 있다. 




5. 멘탈 비행을 통한 방법 




이것은 단지 앞의 형태의 것보다 좀더 고차원적으로 장엄한 형태의 것일 뿐이다. 여기서 동원되는 신체는 아스트럴체가 아니라 마음의 신체, 즉 멘탈 차원의 신체다. 멘탈체는 멘탈 차원에 잠재된 모든 경이로운 감각을 지니며 그 작용은 초월적이며 표현불가능하다. 멘탈체로써 활동하는 사람은 육체와 아스트럴체를 벗어놓고 떠나며 어떤 이유로든 그가 아스트럴 차원에 모습을 나타내고자 하면 자신의 아스트럴체를 가지러 갈 필요도 없이 단지 의지력을 한번 발휘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사용될 아스트럴체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아스트럴체의 물현은 종종 마야비루파(mayavirupa)1)라고 불리며, 그것을 처음으로 만들어내려면 자격이 있는 스승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능력의 소유로 해서 얻는 크나큰 이점은 지복에 찬 고차원계의 모든 아름다움과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점과, 아스트럴계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조차도 한층 더 포괄적인 멘탈 감각을 소유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경이로운 지식의 전망을 열어 보여주며 실제로 전혀 오류가 없다. 그러나 이 고차원계의 비행은 오직 수행된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진화단계의 사람은 오직 일정한 수련을 통해서만 자신의 멘탈체를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하고 의식적인 투시라는 주제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그것이 지닌 한계성과 관련해서 학생들이 반드시 품게 되는 한두 가지의 의문에 몇 마디 답을 해두는 것이 좋겠다. 투시자는 그가 대화하고자 하는 상대는 죽었건 살았건 간에, 세계의 어느 곳에 있든 간에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흔히 받는다. 



이에 대한 대답은 조건부가 될 수밖에 없다. 실험자가 어떤 방법으로든 그 사람과 영적통신을 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찾아낼 수 있다. 어떤 종류의 단서도 없이 수백만의 사람들 중에서 전혀 낯선 한 인물을 찾아 헤맨다는 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개 매우 희미한 단서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하다. 



만일 투시자가 찾는 사람에 대해서 어떤 것이든지 알고 있으면 그를 찾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일종의 화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체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아마도 그가 가진 모든 차원의 신체들이 지닌 파동들의 일종의 평균주파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그 화음을 골라서 내는 방법만 안다면 그것은 공명진동에 의해 즉시 그 사람의 주의를 끌어 그가 어디에 있든지 그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낼 것이다. 



그 사람이 지금 살아있는지, 혹은 최근에 죽은 사람인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섯 번째 종류의 투시로는 천상계의 무수히 많은 존재들 틈에서도 그를 단번에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 사람은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의식이 아스트럴계보다 높이 이르지 못하는 투시자―따라서 앞부분에 나오는 투시법을 사용하는 사람―는 물론 멘탈계에 있는 사람을 결코 찾아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아스트럴 차원까지 닿을 수 있는 화음을 냈는데 반응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소한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이 멘탈계에 있다는 것만은 알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만일 찾는 사람이 투시자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투시자는 단서로 삼을 만한, 그와 관련된 어떤 것을 필요로 할 것이다. 즉, 그의 사진이나 글씨, 혹은 그의 글 등은 그의 고유한 자력을 띠고 있으므로 숙달된 투시자에게는 이 중의 어느 것이든지 좋을 것이다. 



다시금 말하거니와, 그러므로 이러한 방법을 배운 수행자들은 이로써 실종되거나 죽은 사람과 연결할 수 있는 일종의 정보센터를 만들어도 되리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 세계로부터 그런 사람에게 보내어진 메시지는 상황에 따라 전달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설사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그 통신이 신비현상―그것이 마법의 일종임을 물질 차원에서 증명할 수 있는―처럼 보일까봐 아무런 응답도 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흔히 제기되는 또 다른 의문은 심령 투시에 있어서 거리의 제한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각 차원이 지니고 있는 한계 외에는 어떠한 한계도 없다는 것일 것이다. 이 지구의 아스트럴계와 멘탈계는 우리의 3차원 공간개념으로 보더라도 대기권보다 훨씬 더 바깥으로 뻗쳐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대기권만큼이나 분명히 지구 고유의 것에 속한다는 사실은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다른 행성을 자세히 본다거나 그곳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이들 차원계와 관련된 어떤 투시 시스템으로써도 불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의식을 붓디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에게는 우리의 연쇄계(Chain of worlds)에 속하는 다른 혹성으로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고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우리가 논할 대상 밖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행성들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우리가 이야기한 이러한 투시능력을 통해서도 더 얻어질 수 있다. 지구 대기권 밖으로 벗어나면 시야가 훨씬 더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율을 고도로 높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평범한 투시방법을 통해서도 흥미로운 천문학 지식을 많이 얻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지구와 그 주변권 내에서라면 실질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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