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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 [투시] 단순투시 - 부분적 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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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2,382회 작성일 16-08-0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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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638, Vote: 15, Date: 2005/10/12 22:26:24 
글 제 목 [투시] 단순투시 - 부분적 투시
작 성 자 문성호




제 3 장 

단순투시 - 부분적 투시 




그러나 숙달되지 않은 투시자―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유럽의 모든 투시능력자들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을 기억하라―의 경험은 대부분 앞 장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에는 훨씬 못 미친다. 그들의 경험은 여러 면, 즉 그 깊이나 다양성이나 지속성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확성에서 이에 미치지 못한다. 



예컨대 때로 어떤 사람의 투시력은 지속적이기는 하지만 매우 부분적인 것이어서 오직 한두 가지 종류의 현상밖에 관찰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흔히 수반되어야 할, 혹은 그에 앞서 나타나야 할 다른 능력을 결여한, 부분적인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컨대 나의 절친한 친구 중의 한 사람은 밝은데서나 어두운데서나 상관없이 만물에 침투되어 있는 원자의 에테르 질료와 아스트럴 질료를 투시하여 그 구조를 파악해내는 능력을 평생토록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훨씬 더 분명한, 저급한 에테르나 조밀한 아스트럴 질료의 형상을 지닌 존재들은 매우 가끔씩 밖에 보지 못했으며 희미하게나마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설명할 만한 아무런 뚜렷한 이유도, 혹은 다른 어떤 것과의 드러난 상관관계도 없이 단지 이 특별한 능력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이러한 원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증거와 그들이 배열되어 있는 구조를 보여주는 것 외에는 그것이 당장 그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만은 그대로이며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계발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큰 능력의 전조인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경우가 많이 있다. 이와 같은 특정 형태의 투시력을 소유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이 아니라(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것은 매우 독특한 예이다) 에테르와 아스트럴 차원의 명확한 투시이기는 하지만 그 일부만이 계발된 상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사한 경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 투시는 십중팔구 정확성이 결여되어 있다. 말하자면 숙달된 투시자의 경우와 같은 정확성과 확실성 대신 분명치 못한 장면과 그에 대한 추정이 난무한다. 이런 형태의 예는 무수히 찾아볼 수가 있는데 특히 자칭 ‘입시나 사업 천리안’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자들 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어떤 특별한 상황 하에서만 일시적으로 투시력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부류가 있는데, 즉 어떤 사람은 똑같은 조건을 만듦으로써 마음대로 투시상태를 만들어낼 수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주변 상황과는 눈에 띄는 상관관계가 없이 변칙적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평생에 걸쳐서 단지 한두 번 정도만 그런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 중 첫 번째의 경우라면 메스메리즘 상태에서만 투시능력을 발휘하고 평소에는 아무 것도 투시하거나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가끔 높은 차원의 지식에 도달할 수도 있고 매우 정확하게 짚어낼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란 대개 규칙적인 훈련을 하고 있지만 어떤 이유로 해서 도움을 받지 않고는 지상의 삶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이와 같은 부류로서, 특별한 약물이나 어떤 의식을 행함으로써 그 영향 하에서만 일시적인 투시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주로 동양인들―도 있다. 



의식을 행하는 사람은 간혹 스스로 최면 상태에 빠져들며 그 상태에서 어느 정도 투시력을 지니게 된다. 그보다 흔한 것은, 단지 자신을 수동적인 입신(入神) 상태에 들게 함으로써 다른 어떤 존재가 그에게 들어와 그를 통해서 말하게 하는 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전혀 그 의식(儀式)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어떤 아스트럴 차원의 존재를 불러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사술(邪術)에 속하는 것이지 투시는 아니다. 약물이건 의식이건 양쪽 다 자신의 성장과 이웃을 돕기 위한 고상한 목적으로 투시능력을 추구하는 수행자라면 극구 피해야 할 방법이다. 중앙아프리카의 약초 마술사나 마법으로 병을 고치는 주술사, 그리고 타타르의 일부 무당들은 이런 형태의 좋은 예이다. 



일정한 투시능력이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오직 가끔씩만 나타나는 사람들은 흔히 신경질적이거나 매우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경우, 그 능력은 넓은 의미에서 병적인 증세의 하나이다. 그런 것이 나타나는 것은 어느 한도의 에테르 투시, 혹은 아스트럴 투시에 더 이상 아무런 장애요소가 되지 않을 만큼 그들의 신체가 매우 허약해진 것을 나타낸다. 이런 형태의 극단적인 예로서, 주독으로 섬망(譫妄)증에 걸려서 이로 인한 육체의 치명적인 손상과 불순한 정신적 흥분상태에 빠진 사람은 야수적이고 저급한 욕망에 오랫동안 탐닉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주변에 끌어들인 혐오스러운 엘리멘탈과 기타 다른 존재들을 일시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건강상태와는 뚜렷한 상관이 없이 투시능력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도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에텔체의 상태에서 얼마간으 lqus화를 관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평생 오직 한 번만의 투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정확히 분류하기가 어려운 부류이다. 왜냐하면 그 상관관계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극치에 이른 순간에 그런 경험을 하는데 이것은 일시적으로 능력을 고양시켜줄 수 있는 순간이므로 이로써 그에 대한 설명은 충분할 것이다. 



이런 형태의 또 하나의 예로는 유령을 보는 경우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한 것은 친구나 친족을 그들이 죽는 순간에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그 원동력이 되는 것은 사자의 강렬한 소망이다. 그 힘이 그를 한순간 물현(物顯)시켰을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아무런 투시능력도 필요하지 않다. 혹은 그보다 더 그럴듯한 것은 그 힘이 메스메리즘적으로 작용하여서 그것을 보는 자의 육신을 순간적으로 마비시켜 그의 고차원적 감수성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건 간에 그러한 영시(靈視)는 긴급한 상황의 산물이므로 그러한 상황이 되풀이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찮고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투시임에는 틀림없는 단일한 예들이 아직도 설명되지 않고 많이 남아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단지 가설만 세워볼 수 있을 뿐이다. 즉, 이런 경우의 중요한 요인은 물질 차원의 조건이 아님이 분명하며 그 원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려면 각각의 경우에 대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리라는 것이다. 그 중 일부의 경우는 아스트럴 차원의 존재가 뭔가 의사를 전달하려고 애쓰다가 진작 해야 할 말의 중요한, 혹은 유용한 부분은 그 단순투시자의 의식 속에 전달하지 못하고 하찮은 내용만 남겨놓은 경우임이 밝혀졌다. 



투시현상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보면 이러한 모든 형태와 기타 종류의 현상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단지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틀림없이 몇 번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사례의 목록에서 주의 깊게 제외시켜야 할 것이다. 이 방면을 공부하는 사람은 끊임없는 인내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그는 혼돈 뒤에 숨어있는 질서를 어렴풋이 식별해내기 시작할 것이며 점차로 전체 진화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법칙을 조금씩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밟아온 순서를 그가 따른다면, 즉 그가 우선 일반적인 투시에 관련된 차원계들에 관한 실제적 사실들에 가능한 한 완전히 숙지하도록 노력을 쏟는다면 그의 노력은 매우 절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일 에테르 투시나 아스트럴 투시를 통해서 실제로 어떤 것들이 보이는지, 그리고 그 각각의 한계점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다면, 곧 그는 자신이 관찰한 사례를 비교해볼 수 있는 기준을 확보한 셈이 되는 것이다. 부분적인 투시의 모든 사례들이 이러한 전체 중의 어떤 자리에 반드시 해당하는 것이므로 그가 전체의 윤곽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약간의 훈련만으로도 그가 마주치게 되는 사례들을 분류하는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멘탈 투시의 경이로운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거기까지는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것은 신비주의 최고의 비전(秘傳)을 올바로 전수받은 수행자들 사이에서가 아니면 그러한 경우를 발견하기란 그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행자들 앞에는 새로운 세계, 그 아래의 모든 세계들보다도 광활한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곳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영화가 하나의 일상생활처럼 진행되는 그런 세계이다. 

그곳의 놀라운 능력, 말로 할 수 없는 희열, 그리고 배우고 일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신지학 입문서 시리즈 제6권에 소개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훈련된 수행자에게는 그것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최소한 그가 소화해낼 수 있는 것―이 손닿는 곳에 있지만 훈련되지 않은 투시자들에게는 그것을 넘본다는 것은 단지 가능성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메스메리즘 상태에서 멘탈 투시가 시도된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행자와 대상자 쌍방의 높은 영성과, 그 상념과 의도의 절대적인 순수성이라는 면에서 거의 초인간적인 덕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투시와, 좀더 완전히 표현해서 그 이상의 차원에 속하는 투시에는 영시(Spiritual Sight)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그러한 영시가 우리 눈앞에 열어 보여주는 천상의 세계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 우리를 온통 둘러싸고 펼쳐져 있으므로 단순투시라는 주제 하에서 그에 대한 간단한 언급을 한 것은 타당한 일이다. 곧 넘어가게 될 주제인 공간투시를 다루면서 다시금 언급할 필요는 생기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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