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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 [투시] 단순투시 - 완전한 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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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2,502회 작성일 16-08-0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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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965, Vote: 16, Date: 2005/10/12 22:25:04 
글 제 목 [투시] 단순투시 - 완전한 투시
작 성 자 문성호




제 2 장 

단순투시 - 완전한 투시 




우리는 단순투시를 에테르, 혹은 아스트럴 차원의 단순한 눈뜨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단순투시는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해당 차원상의 대상을 볼 수 있는 능력으로서, 보통 멀리 떨어진 것이나 과거, 혹은 미래의 것을 보는 능력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능력을 전적으로 배제해버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아스트럴 차원의 시야는 육체 차원의 시야보다 그 범위가 상당히 넓어서, 특별히 그런 것을 보는 방법을 모르는 투시자들에게도 과거와 미래의 단편들이 우연히 보이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우연한 일별과 시간투시, 혹은 공간투시의 확실한 능력은 실제적으로도 확연히 구별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투시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매우 모호한 인상만 얻는 사람으로부터 에테르 차원과 아스트럴 차원의 광경을 완전히 투시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단계의 단순투시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쉬운 방법은 이 완전한 단계에서는 무엇이 보일까 하는 것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능력을 부분적으로 지닐 경우에 대해서는 저절로 알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에테르 차원의 투시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자. 이미 말한 대로 이것은 단지 훨씬 더 광범위한 물질파동에 대한 감수성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감수성을 소유하게 되면 대부분의 인간들의 눈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이 능력의 소유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를 생물과 무생물 차원의 친숙한 대상들의 모습을 통해서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것이 우리 앞에 어떤 전혀 색다른 요인을 등장시킬지를 알아보자. 그러나 내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이 능력을 완벽하게 갖춘 경우라는 것과, 그리고 현실 속에서 마주치는 사례들의 대부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 능력을 가짐으로 해서 눈앞에 드러나는 무생물 대상의 모습에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는 그것들이 대부분 거의 투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파동의 파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소문에나 듣던 ‘벽을 뚫고 보는’ 요술을 자신이 밥먹듯이 할 수 있게 된 것을 발견한다. 그의 새로 뜨인 시야에는 벽이 옅은 안개의 농도보다도 짙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옆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마치 그 사이에 아무런 장벽도 없는 것처럼 꿰뚫어보며, 잠겨진 상자 속의 내용물을 정확하게 알아맞히고 봉해진 편지봉투 속의 글씨를 읽어낸다. 약간의 연습만 하면 그는 닫아놓은 책 속에서 주어진 말이 씌어져 있는 곳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이 마지막의 묘기는 아스트럴 투시로는 너무나도 쉬운 것이지만 에테르 투시를 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보고자 하는 페이지를 그 위에 덮여있는 페이지들을 <관통해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여기서 그가 언제나 그런 비범한 투시능력으로써 사물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오직 자신이 원할 때에만 그렇게 보는 것인지를 궁금해 한다. 대답은, 만일 그 능력이 완전히 개발된 것이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뜻에 달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투시와 일상적인 시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있다. 그는 마치 우리가 책을 보다가 문득 1마일쯤 떨어져 있는 움직이는 물체로 초점을 옮기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쉽게 두 가지 능력의 사이를 오갈 수가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보이는 대상의 한쪽, 혹은 다른 쪽 측면으로 의식의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물체를 보고 있을 때에도 그 건너편에 있는 벽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상의 한쪽 측면에 일시적으로 의식의 초점을 또렷이 맞추고 있을지라도 그는 그것의 다른 쪽 측면을 늘 의식하고 있다. 



이러한 투시력을 가지게 됨으로써 생기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변화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딱딱한 땅바닥이 그에게는 어느 정도 투명하게 보임으로써 마치 우리가 맑은 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땅 밑의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는 땅 속에서 벌레들이 굴을 파고 사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지표에서 그리 깊지 않은 광맥이나 석탄광을 찾아내는 등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 



고체를 투시하는 에테르 투시의 한계는 우리가 물이나 안개 속을 들여다볼 때 느끼는 한계와 비슷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일정한 거리를 넘어선 곳은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뚫고 보는 매질은 완전히 투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대상의 모습도 역시 이 정도의 투시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상당히 다르게 보인다. 인간과 동물들의 신체는 그에게는 거의 투명하게 보인다. 그리하여 그는 신체의 여러 가지 내부 기관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어느 정도 그들의 질병을 진단할 수도 있게 된다. 



확장된 시야는 또한 육안이 인식할 수 있는 파장의 빛을 반사하지 못하는 엘리멘탈(Elemental) 및 다른 여러 단계의 생물들의 형체를 다소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보이게 되는 존재들로서는 그 몸이 치밀한 에테르 질료로 이루어져 있는 자연계의 저급한 정령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의 산간 지방, 그리고 전 세계 오지의 시골 마을에 널리 퍼져 있는 많은 전설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요정과 도깨비와 악마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자연계 정령들의 광활한 세계는 주로 아스트럴 차원의 세계이다. 그렇지만 그 중의 상당한 부분은 물질계의 에테르 부분에 속해 있다. 그리고 물론 이 부분은 다른 부분들보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 띌 가능성이 더 많다. 실제로 흔히 퍼져 있는 요정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들이 바로 이러한 계층에 속한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요정의 전설을 연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요정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준다는 눈에 바르는 신비한 약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약과 그것을 눈에 바른 결과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의 무수히 많은 지역들로부터 한결같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인류의 보편적인 전통 뒤에는 언제나 어떤 진리가 숨어 있듯이, 그 배후에도 어떤 진리가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단지 눈에만 어떤 약을 바름으로써 그 사람의 아스트럴 투시력이 각성되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다만 그러한 약을 온몸에 바르면 아스트럴체가 의식이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로 육체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크게 도움을 줄 수는 있다. 이에 대한 지식은, 중세의 마법에 대한 재판에 증거로서 제시된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때까지만 해도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을 눈에만 바른다면 에테르 파동의 일부를 받아들일 정도까지는 용이하게 자극을 줄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전설에는 이 신비한 약을 사용한 인간이 자신의 확장된 투시력을 다른 요정에게 팔아넘기려고 할 때는 요정이 그의 눈을 때리거나 찌름으로써 그의 에테르 투시력뿐만이 아니라 육안의 시력까지 빼앗아가 버린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현대과학’ 문고 중에서 E. S. 하틀레인이 쓴 『요정 이야기 속의 과학』이라든가, 혹은 요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모아놓은 책이라면 사실 거의 어떤 책이든지 참조가 될 것이다.) 만일 획득한 투시력이 아스트럴 차원의 것이었다면 그러한 일이 전혀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육안만 상하게 함으로써는 아스트럴 투시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약을 바름으로써 얻은 투시력이 에테르 차원의 것이었다면 대부분의 경우 육안의 손상은 에테르 투시력을 단번에 앗아가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육안은 에테르 투시력이 기능하는 통로가 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급하고 있는 이러한 투시능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인간의 에텔체 또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육체와 그 크기가 너무나 똑같이 겹쳐 있어서 초월상태, 혹은 마취의 영향에 의해서 그것이 육체의 바깥쪽으로 부분적으로 삐어져 나오지 않는 한 그의 눈을 끌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후에 에텔체가 육신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면 그것은 뚜렷하게 그의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가 공동묘지를 지나다닐 때면 죽은 자의 에텔체가 자신의 무덤 근처를 배회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심령강신술을 참관한다면 영매의 옆구리에서 에테르 질료가 빠져나오는 것과, 영계에 사는 존재가 그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용하여 영계통신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가 조만간에 틀림없이 의식하게 될 또 한 가지의 사실은 색깔에 대한 자신의 감각이 섬세해진 것일 것이다. 그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스펙트럼 상의 어떤 색깔과도 전혀 종류가 다른, 따라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말로서도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전혀 새로운 몇 가지의 색깔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색깔로만 된 새로운 대상들을 발견할 뿐만이 아니라, 그가 이미 친숙해 있는 대상들도 이전의 색깔에 이 새로운 색깔들이 추가됨에 따라 그 색깔이 변해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완전히 똑같은 색으로 보이는 것도 좀더 예민한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종종 전혀 다른 빛으로 보이게 된다. 



이제 우리는 에테르 투시력을 얻은 사람의 세계에 나타날 중요한 변화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와 동시에 그의 다른 감각들에도 그에 상당하는 변화가 일어나서 예컨대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거나, 심지어는 느낄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제, 그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아스트럴 차원의 투시력까지 얻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오게 될까? 



그 변화는 매우 다양하고 클 것이다. 실제로 전혀 새로운 세계가 그의 앞에 펼쳐진다. 앞서와 같은 방법으로 그 놀라운 모습을 잠시 살펴보자. 우선 무생물 대상의 모습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이 점에 대해서는 『바한(The Vahan)』이라는 최근의 책에 담긴 재미있는 대답을 인용함으로써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에테르 투시력과 아스트럴 투시력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4차원의 법칙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후자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길은 그 예를 들어보는 것이다. 당신이 두 가지의 투시력을 통하여 어떤 사람을 본다면 두 경우 모두 그이 등에 달린 단추를 투시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에테르 투시력을 사용하였다면 당신은 단추를 그를 <관통하여> 볼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단추의 뒷면(부착면)이 앞으로 향한 모습을 볼 것이다. 그러나 아스트럴 투시력으로 본다면 당신은 그와 같이 보는 동시에, 또한 마치 그의 등 뒤에 서서 보는 것처럼 윗면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당신이 모든 면에 글씨가 새겨진 나무로 된 주사위를 에테르 투시력으로 본다면 육면체는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비쳐 보일 것이다. 그래서 반대편의 글씨는 좌우가 뒤집어져 보일 것이다. 또 측면에 새겨진 글씨는 일부러 움직여서 보지 않는 한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스트럴 투시력으로 본다면 당신은 모든 면을 단번에, 그리고 마치 육면체를 전개하여 펼쳐놓은 것처럼 모든 면을 똑바로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내부의 모든 입자들을, 다른 입자들을 <관통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펼쳐놓은 것처럼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전혀 색다른 방향,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방향에 대해서도 모두 동시에 직각인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게 될 것이다.” 



“시계의 뒷면을 에테르 투시력으로 투시한다면 모든 톱니바퀴들과, <그것을 관통하여> 문자판까지 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뒤집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아스트럴 투시력으로 투시하면 문자판은 똑바로 보이고 톱니바퀴들도 하나도 서로 겹치지 않고 따로 놓여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번에 핵심, 즉 변화의 중요한 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 그는 모든 것을 그가 이전에 상상했던 그 어떤 것과도 판이하게,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닫혀있는 책의 어떤 페이지이든 더 이상 눈꼽만치의 어려움도 없이 읽어낼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앞의 페이지들을 관통하여 어떤 페이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 페이지만이 따로 있는 것처럼 눈앞에 바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이나 광물질의 광맥이 묻혀 있는 깊이도 이제는 그의 투시에 장애가 될 수 없다. 그는 더 이상 그것을 가리고 있는 땅을 관통하여 보지 않기 때문이다. 에테르 투시에서는 가로막힌 벽의 두께나 벽의 수가 투시의 명확성에 큰 차이를 가져오지만 아스트럴 투시에서는 그것은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스트럴 차원에서는 그 벽들은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은 매우 모순되고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이러한 개념에 특별히 익숙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적인 사실 이하의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를 4차원이라는 매우 골치 아픈 문제의 한가운데에 빠트려 놓는다. 이 4차원의 문제는 가장 깊은 흥밋거리이지만 우리에게 허용된 공간 속에서는 논하는 척조차 할 수가 없다. 그것을 제대로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C. H. 힌턴의 『과학의 로맨스(Scientific Romances』나 A. T. 쇼필드 박사의 『또 하나의 세계(Another World)』를 읽어보고, 그 다음으로 힌턴의 좀더 방대한 저서인 『사고의 신시대(A New Era of Thought)』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힌턴씨는 자신이 간단한 4차원의 형상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도를 참을성 있게 따를 용의가 잇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그러한 이해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러한 이해가 그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의 능력권 내에 있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당한 수학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정도 그가 말하는 4차원 육면체는 실제임을 증언할 수 있다. 그것은 아스트럴 차원에서는 매우 흔한 형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임의적인 기호 대신에 색깔로서 몇 가지 차원들을 나타내는 새로운 방법을 완성했다. 그는 이것이 이에 대한 공부를 훨씬 더 단순화시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독자들은 육면체의 어떤 부분이나 모습도 한눈에 구별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이 함께 실린 이 방법의 해설은 출판 준비가 완료되었으며 1년 내로 그 모습을 보이리라는 소식이다. 



나는 블라바츠키 여사가 4차원 이론에 관한 언급 속에서, 그것은 물질의 전적인 투과성의 개념을 서툴게 서술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라고 하는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을 알고 있으며, W. T. 스테드도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그의 독자들에게 투과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것을 알고 잇다. 그러나 거듭되는 주의 깊고 치밀한 연구는 이러한 설명도 사실을 모두 포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꽤 확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에테르 투시에 관한 한은 완벽한 설명이 되지만 아스트럴 투시에 의해서 끊임없이 관찰되고 있는 사실에 대한 실제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오직 힌턴이 해석한 4차원의 사뭇 판이하고도 심도 깊은 개념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와는 달리 블라바츠키 여사가 그런 글을 썼을 때 그녀는 에테르 투시만을 염두에 둔 것이지 아스트럴 투시에 대해서 말한 것이 아니며, 다른 고차원의 능력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글을 얼마든지 갖다 붙일 수가 있다는 점에는 그녀도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그러므로 이것이 비범하고 설명하기 힘든 능력이라는 사실을 뒤따를 모든 내용들 속에서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능력은 고체 내부의 모든 지점을, 마치 원의 내부의 모든 지점이 그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의 눈앞에 완전히 드러나 있는 것처럼, 관찰자의 눈앞에 완전히 노출시켜 놓는다. 



그러나 이조차도 결코 이 능력이 그 소유자에게 부여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모든 대상의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투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아스트럴 대응부까지도 투시한다. 물질의 모든 원자와 분자는 그에 대응되는 아스트럴 질료의 원자와 분자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로써 구성된 형체는 투시능력자들의 눈에 분명하게 보인다. 일반적으로 대상들의 아스트럴 부분은 물질 부분보다 좀더 바깥으로 퍼져나와 있다. 그래서 돌이나 금속, 그리고 그 외 다른 것들도 이 아스트럴 오라에 싸인 모습으로 투시된다. 



이처럼 무기물질에 대해서만 살펴보더라도 아스트럴 투시력을 가짐으로써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물체의 아스트럴 부분이 보일 뿐만 아니라, 이전에 보였던 것까지도 이제는 더욱 분명하고 여실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새로운 투시력은 그로 하여금 육안을 통한 것보다 훨씬 더 사물의 진면목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유리로 된 육면체를 아스트럴 투시력으로 본다면 그 면들은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모두 같은 크기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육안으로 보면 먼 쪽의 면은 가까운 쪽의 면보다 작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물론 육안이 지닌 한계로 인한 착각일 뿐이다. 



살아있는 대상에 대한 관찰에서 아스트럴 투시력이 부여해주는 능력들을 생각해보면 아스트럴 투시의 이점은 더욱 확실해진다. 아스트럴 투시력은 식물이나 동물의 오라를 볼 수 있게 하며, 따라서 동물의 경우에는 그들의 욕망이나 감정, 혹은 그들이 품는 모든 생각이 투시자의 눈앞에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 능력의 가치를 가장 절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을 대할 때이다. 왜냐하면 이 능력으로써 얻는 정보를 참고한다면 그는 그들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도와줄 수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아스트럴체의 오라까지 투시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아직도 그의 눈에는 인간의 고차원적인 부분들이 감추어져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자신의 능력 안에 있는 것들로부터도 고차원적인 부분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에텔체를 투시하는 능력은 신경계통의 질환이나 결함을 찾아내고 진단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며, 한편 아스트럴체의 상태로부터는 그 사람의 감정과 열정과 욕망과 성향, 그리고 그가 품고 있는 많은 상념들까지도 단번에 알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사람을 보면 그는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빛나는 안개와도 같은 아스트럴 오오라가 그의 모든 생각과 감정의 변화에 따라서 그 밝기와 색깔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다양한 빛깔로 빛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는 이 오라가 순수한 애정의 아름다운 장밋빛, 혹은 헌신적인 감정의 그윽한 청색, 혹은 이기심에 가득한 둔하고 탁한 갈색, 혹은 분노에 찬 짙은 진홍색, 또는 욕정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무섭도록 붉은 빛, 공포에 질린 잿빛, 그리고 악의와 증오로 가득한 먹구름빛, 그밖에도 숙달된 눈에는 너무나 쉽게 판별되는 다른 수백 가지의 상징들로 가득 찬 것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앞에서는 누구라도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진실한 감정상태를 감출 수가 없게 된다. 



오라의 다양한 상징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흥미 깊은 연구대상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그것에 대해서 상세하게 논할 지면을 가지고 있지 않다. 원색의 많은 도해가 곁들여진, 그에 대한 훨씬 더 상세한 설명은 내가 쓴 『인간,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Man Visible and Invisible)』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스트럴 오라는 그 순간 지나가는 감정의 일시적인 결과를 비쳐줄 뿐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안정상태에 있을 때의 오라의 색깔 비율과 그 배열은 그 사람의 전반적인 성격과 성향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 아스트럴체는 그 사람이 그 차원상에서 발현될 수 있는 만큼만이 표현된 것이므로 그 속에서 보이는 것으로부터 그보다 고차원에 속하는 훨씬 더 많은 것을 꽤 정확하게 추론할 수가 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의 성격을 판별함에 있어서 투시자는 아스트럴 차원상에 나타난 그의 상념, 즉 투시자의 시계(視界)에 포착될 수 있는 만큼 그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상념의 진정한 고향은 멘탈계이다. 그리고 모든 상념은 심신의 파동으로서 먼저 멘탈계에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이 이기적인 상념이라면, 혹은 그것이 어떻게든 감정이나 욕망과 얽혀 있으면 그것은 즉시 아스트럴계로 내려간다. 그리고 스스로 아스트럴 질료의 형체를 띠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거의 모든 상념이 이 중의 어느 한 범주에 속한다. 그리하여 실제로 그들의 전인격이 투시자의 아스트럴 투시력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들의 아스트럴체와, 그로부터 끊임없이 방사되는 상념체는 투시자에게는 마치 달리면서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글씨로 써진, 펴놓은 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투시력을 가진 사람의 눈에 상념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베산트 여사와 내가 함께 쓴 책인 『상념체(Thought-Forms)』 속의 그림들이 어느 정도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스트럴 차원에서 완전한 투시력을 가진 사람의 눈에 나타나는 생물과 무생물 대상의 모습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잠시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어떤 전혀 새로운 대상이 그의 눈앞에 나타나게 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는 여러 면에서 자연계가 훨씬 더 온전하게 보이는 것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그의 주의를 끄는 것은 이 새로운 세계의 살아있는 존재들을 것이다. 우리에게 허용된 지면 안에서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신지학 입문서 시리즈(Theosophical Manuals)』의 제5권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아스트럴계에 거주하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 가운데서 오직 몇 종류만을 열거해보는 것으로 그치겠다. 


투시자는 변화무쌍한 형상을 한 엘리멘탈 에센스(Elemental Essence)들의 끊임없는 물결이 그를 둘러싸고 소용돌이치며, 때로는 위협조차 하지만 확고한 의지력 앞에서는 언제나 물러가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선이든 악이든 간에 인간의 상념과 소망(원)에 의해 이 물결로부터 일시적으로 떨어져 나와 분리된 형체를 취하는 무수한 존재들의 군상에 놀랄 것이다. 그는 다양한 종류의 자연계의 정령들이 일을 하거나 장난치고 있는 모습을 볼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기독교 용어의 천사군대에 근사하게 해당하는 빛나는 천신들의 일부 하급 진화계를 볼 수 있음에 놀람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도 아마도 가장 그의 흥미를 끄는 것은 아스트럴계의 인간 존재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들을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즉, 우리가 살아있다고 표현하는 부류의 사람들과, 그보다도 훨씬 더 생기가 넘치는, 우리가 어리석기 그지없게도 죽은 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마도 그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 혹은 그가 얼마나 진전을 보이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 보내어진, 완전히 깨어서 의식을 차리고 있는 존재들이 여기저기 눈에 띌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대부분은 잠 속에서 육신을 떠나와 있는 것으로서 자신의 생각 속에 빠져 있어서 실제로 자신의 주변 상황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떠돌아다니고 있다. 




최근에 죽은 자들의 엄청난 무리들 중에서는 모든 단계의 의식과 지능과 온갖 다양한 성격들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제한된 시각에는 그토록 절대적인 변화로 보이는 죽음도 실제로는 그 사람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다. 죽은 다음날의 사람은 죽기 전날의 그와 동일한 사람이다. 육신을 벗어놓은 것만 빼놓으면 똑같은 성격과 인격, 똑같은 덕성과 악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육신을 잃은 것 자체는 외투를 벗어놓은 것 이상으로 그에게 변화를 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투시자들은 죽은 자들 중에서도 산 자들에게서와 똑같이 똑똑한 자와 멍청한 자, 선량한 자와 악랄한 자, 진지한 자와 경망스러운 자, 영적인 자와 육욕에 빠진 자를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는 죽은 자들을 볼 뿐만 아니라 그들과 대화도 할 수가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매우 쓸모가 있어서 그들에게 매우 가치 있는 정보와 충고를 제공해줄 수가 있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매우 놀라고 당황해 있는 상태이며 때로 심한 불안 속에 빠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사후의 세계가 서양의 대중적인 종교들이 이 중차대한 주제에 관해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인 치기어린 이야기들과는 너무나 판이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들에게는 정말 요긴한 친구인 것이다. 




이 능력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많은 점에 있어서도 죽은 사람에게나 산 사람에게나 모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면의 주제에 대해서는 나의 책 『보이지 않는 원조자(Invisible Helpers)』 속에서 이미 언급이 되어 있다. 그는 아스트럴계의 존재들뿐만 아니라 아스트럴계의 시체들―분해되어 가고 있는 모든 단계의 유령들과 그 겉껍질들―도 볼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단지 이 정도로만 언급하겠다. 좀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독자들은 신지학 입문서 시리즈 제3권(『죽음 뒤에는?(Death-and After?)』)과 제5권(『아스트럴계(The Astral Plane)』)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아스트럴 차원의 완전한 투시가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놀라운 효과는 이제 더 이상은 의식의 단절상태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밤이 되면 잠자리에 누워, 휴식을 필요로 하는 육신을 떠나서 그보다 훨씬 더 편안한 아스트럴체를 입고 활동한다. 아침이 되면 그는 돌아와 다시 육신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는 이 두 가지 상태 사이에서 결코 의식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말하자면 이중의, 그러나 여전히 하나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의 3분의 1을 망각 속에 잃어버리지 않고 삶 전체를 향유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가 발견하게 될 또 하나의 신기한 능력(이의 완전한 통제는 그보다는 한층 더 높은 데바찬(Devachanic)의 능력에 속한 것이기는 하지만)은 지극히 미세한 물질 입자, 혹은 아스트럴 입자를 마치 현미경처럼 ―지금까지 만들어진, 혹은 앞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어떤 현미경도 이 영적인 확대능력의 천분의 일만큼도 소유하지는 못할 것이지만― 어떤 크기로든 마음대로 확대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과학이 가정한 분자와 원자들이 이를 통해서 볼 수 있으며, 이 세밀한 관찰을 통해서 그는 이들의 구조가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상상해온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그는 흥미진진한 가운데 가장 근접한 관찰을 통해서 모든 종류의 전기․자기적 작용과 기타의 에테르적 작용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만일 전문과학자가 그들이 그토록 경솔하게 기술하는 이 물질들에 대한 투시력을 얻는다면 매우 놀랍고 아름다운 발견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은 동양의 문헌들 속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영적 수행에 진력하는 자에게 생기는 능력, 즉 싯디(Siddhis)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거기에 언급되는 이름들은 바로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마음대로 크게 혹은 작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고 되어 있다. 사실을 이토록 괴상하게 뒤집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런 표현이 딸리게 된 이유는 이 묘술을 행하는 방법이 실제로 이 고문헌 속에 표현된 바로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극도로 미시적인 세계가 그토록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작은 임시 시각기관을 사용한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혹은 차라리 그 반대로) 과학이 지금까지 꿈꿨던 모든 것을 초월한 곳까지 시각―육체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바라건대 정신적인 의미의 시각도―을 넓힐 수 있는 것은 엄청나게 큰 임시 시각기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크기의 변화는 사실은 수행자의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그의 외부의 어떤 것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결국 고대 동양의 문헌이 사실을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언급해놓은 셈이다. 




신비력과 제2의 눈(Second sight)도 최대한도로 수행하자 발견하게 될 능력 중의 일부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의 주제 하에서 더 적절히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시간, 혹은 공간 속의 투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대략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아스트럴 투시력을 가진 숙달된 수행자가 그 투시력이 열어 보여주는 엄청나게 넓은 신세계에서 발견하게 될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영혼의 존재, 그것의 사후의 존속, 카르마의 법칙의 작용, 그리고 그와 맞먹는 매우 중요한 다른 사항들에 대한 경험적인 확신이 가져올 그의 정신적 태도의 엄청난 변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가장 심오한 지적 확신조차도 개인의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얻은 정확한 지식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느껴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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