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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 [투시] 투시란 무엇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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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2,490회 작성일 16-08-0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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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882, Vote: 15, Date: 2005/10/04 11:06:26 
글 제 목 [투시] 투시란 무엇인가 2
작 성 자 문성호 




지금까지 우리는 순전히 육체적인 감각의 확장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인간의 에텔체도 사실은 육체적인 틀의 섬세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과, 따라서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은 다양한 밀도를 가진 많은 양의 에테르 질료(그 잠재력이 아직도 대부분의 인간들 속에서 잠자고 있는)를 지니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우리가 자신의 능력 계발을 이 선상에만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종류의 무한한 가능성이 이미 무이 앞에 열려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외에도 인간은 그보다 고차원계의 아스트럴체와 멘탈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각성되어 활동하게 할 수가 있어서 각각 해당 차원상의 물질의 진도에 반응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신체를 통해서 기능하는 방법을 터득해감에 따라 에고(Ego)의 앞에는 두 개의 전혀 새롭고 훨씬 더 광대한 지식과 능력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 이 두 세계는, 우리를 온통 둘러싸고 있고 서로 침투되어 있지, 서로 확연히 구별되며 질적으로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차라리 서로가 서로 속에 녹아들어 있어서, 아스트럴체의 가장 저급한 부분은 육체의 가장 높은 부분과 바로 연속되며 마찬가지로 멘탈체의 가장 저급한 부분은 아스트럴체의 가장 섬세한 부분과 바로 연속된다. 이 신체들을 상상하되, 어떤 새롭고 이상한 물질을 상정할 필요는 없다. 단지 일반적인 종류의 물질이 너무나 섬세하게 분화되고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진동함으로써 우리에게 실제로 완전히 새로운 조건과 성질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각이 꾸준히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식하던 것보다 훨씬 더 높거나 훨씬 더 낮은 파동을 시각과 청각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추가적인 파동들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물질적인 차원에 속할 것이며, 현재의 우리에게는 덮여진 책과도 같은 물질계의 에테르 부분으로부터 인상을 획득할 수 있게 할 뿐인 것이다. 그러한 인상은 여전히 눈의 망막을 통해서 받아들여질 것이다. 물론 그 인상은 망막의 견고한 물질 부분이 아니라 그 에테르 부분을 자극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여전히 에텔체의 전체 표면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전문화된 기관에만 전달된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경우도 더러 있어서 에텔체의 다른 부위가 눈만큼이나, 심지어는 눈보다도 더욱 예민하게 이 추가적인 파동에 반응한다. 이러한 기현상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주로 아스트럴 차원의 약간의 부분적 각성의 효과로 설명된다. 왜냐하면 신체의 감각부위는 거의 예외없이 아스트럴체의 생명력의 중추인 차크라들 중의 하나와 대응되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트럴 차원의 의식이 아직 각성되지 않아서 이 중추들이 해당 차원계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차크라들은 그것과 상호침투되어 있는 에테르 질료를 더욱 예민하게 활동하도록 자극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 

우리가 아스트럴 감각 자체를 대할 단계에 이르면 그 작용하는 방식은 매우 달라진다. 아스트럴체에는 전문화된 감각기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스트럴체의 생리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육체와 아스트럴체가 완전히 상호침투되어 있어서 이 두 가지 신체는 정확하게 대응되며, 모든 물질체는 그에 해당하는 아스트럴 대응체를 반드시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일치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게 할 것이므로 아마도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게 된다. 

자, 이 모든 이야기들은 사실이다. 그리고 평상시 아스트럴 차원의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이것을 오해할 가능성도 많다. 모든 수준의 물질적 질료는 그것과 늘 결부되어 있는 ―상당한 강도의 신비적인 힘이 가해지지 않고는 떨어지지 않는, 그리고 그런 경우에조차 오직 그 힘이 그것을 떼어놓기 위한 뚜렷한 목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동안에만 떨어져 있는― 대응 수준의 아스트럴 질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스트럴 입자들 간의 상호관계는 그에 대응하는 물질 입자들 간의 상호관계보다 훨씬 더 느슨하다. 

예컨대 쇠막대기는 고체 상태―말하자면, 입자들이 자신의 영역 안에서는 각기 매우 빠른 속도로 진동하고 있지만 상대적인 위치에서는 비교적 거의 변화가 불가능한 상태―의 물질분자들의 덩어리이다. 이것의 아스트럴 대응체는 우리가 흔히 고체 아스트럴 질료라고 부르는 것, 즉 아스트럴 하부차원의 가장 저급하고 조밀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입자들은 마치 물질계의 액체 입자들처럼 끊임없이, 그리고 빠른 속도로 상대적인 위치를 바꾸고 서로의 사이를 움직이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하나의 물질입자와, 어떤 일정한 순간에 그 대응체로서 기능하는 그만한 양의 아스트럴 질료 간에는 영구적인 결합관계가 없다. 

이것은 인간의 아스트럴체에 있어서도 똑같이 사실이다. 목적을 위해서 당분간 우리는 아스트럴체를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겠다. 즉, 육체의 정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좀더 조밀한 집합체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그보다 밀도가 낮은 아스트럴 질료의 구름이 그것이다. 이 두 부분과 그 사이에는 매순간 앞서 묘사된 입자들의 상호순환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아스트럴체 내의 입자들의 운동을 지켜보면 마치 맹렬히 끓어오르는 물과 같은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므로 육체의 어떤 기관도 그 대응체로서 일정량의 아스트럴 질료를 가져야 하지만 동일 입자들 한 번에 몇 초 이상의 시간 동안 가지고 있지는 못하며 따라서 시각신경이나 청각신경 등으로 분화된 육체의 신경물질과 대응되는 것이 아스트럴체에는 없다는 것이 곧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눈이나 귀가 항상 그에 대응하는 아스트럴 질료의 대응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 특정 부위의 아스트럴 질료는 아스트럴 빛이나 아스트럴 소리를 일으키는 파동에 대한 반응력을 아스트럴체의 다른 어떤 부위보다 많이도 적게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아스트럴 시력’이라든가 ‘아스트럴 청력’ 등의 말을 늘 쓰지만 그와 같은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인간이 육체 속에 있을 때 눈과 귀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과 동일한 성질의 정보를 그가 자신의 아스트럴체 안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그의 의식에 전달해주는 그러한 파동에 반응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러나 전혀 다른 아스트럴 차원의 조건 속에서는 그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분화된 기관이 필요하지 않다. 아스트럴체의 모든 부분들 속에는 그러한 반응을 할 수 있는 질료가 들어 있고 따라서 아스트럴체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뒤나 아래, 혹은 위에 있는 대상을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똑같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정확을 기하기 위하여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되었던 차크라의 문제이다. 신지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영적으로 진화해감에 따라 신성한 뱀의 불 ‘쿤달리니’에 의해 하나씩 차례로 각성되어야 하는, 아스트럴체와 에텔체 그 자체에 존재하는 힘의 중추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다. 우리가 육체 차원에서 눈과 귀를 통해서 보고 듣듯이, 이 차크라들을 통해서 보고 듣는 것은 아니므로 이들을 일반적인 의미의 기관이라는 말로써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아스트럴 감각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은 사실상 이 차크라의 각성에 크게 의존한다. 이 각각의 차크라들은 각성이 되면 아스트럴체 전체에 새로운 파동군에 대한 반응 능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중추들은 그와 관련된 일정량의 아스트럴 질료를 영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단지 신체를 이루는 물질 속의 소용돌이―모든 입자들이 그것들을 차례로 통과하는―일 뿐으로, 아마도 상위 차원계로부터의 고차원적인 힘이 아스트럴체 위에 부딪쳐오는 지점일 것이다. 이 설명조차도 이들의 외형에 대해서는 아주 부분적인 개념 밖에 주지 못한다. 실제로 이들은 4차원적인 소용돌이여서, 이들을 통해서 나오는, 그리고 이들의 존재의 원인이 되는 힘은 마치 난데없이 어디선가 솟아나오는 것만 같이 보인다. 그러나 정도의 여하간에, 모든 입자들이 그 각각의 차크라들을 통과하므로, 그렇다면 그 각각의 차크라들이 차례로 신체의 모든 입자들에게 특정 주파수대의 파동에 반응하는 능력을 각성시킬 수가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멘탈계의 상황은 또 전혀 다르다. 이 경우에는 시각이나 청각 따위의 분리된 감각을 이야기할 수가 없고, 대신 도달하는 파동에 대해서 너무나 완전하게 반응함으로써 어떤 대상이 그 인지범위내로 들어오게 되면 당장 그것을 완전히 인지하여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그것에 관한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알게 되는, 그런 보편적인 단일 감각을 상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경이로운 능력조차도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능력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멘탈계에서도 물질계와 똑가티 대상으로부터 관찰자에게 전달되는 파동에 의하여 인상이 전달되는 것이다. 

붓디계(Buddhic plane)에 이르면 우리는 지금까지 말해왔던 것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뭇 새로운 능력을 처음으로 대하게 된다. 거기서는 어떤 대상이든지 전적으로 다른 방법으로써 인식하게 되는 바, 외부적인 파동은 여기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대상은 자신의 일부가 되며, 그는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그것의 내부로부터 그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능력은 일반적인 투시와는 상관이 없다. 

부분적인 것이건 완전한 것이건 간에 이 중의 어떤 능력을 계발한다는 것은 우리가 저의한 투시의 범주에 속한다. 즉, 보통의 육안으로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을 보는 능력 말이다 그러나 이들 능력은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 계발될 수 있으며 이 상이한 방법들에 대해서는 몇 마디 덧붙여두는 것이 좋겠다. 

인간이 진화해감에 있어서 만일 외부의 지극히 온화한 영향력을 제외한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을 수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시작부터 완벽하게 정상적이고 순조로운 방법으로 진행될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자신의 감각을 정상적인 순서로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육체 감각이 점차 그 인지영역을 확장하여 마침내 조밀한 물질 뿐만 아니라 에테르의 모든 물리적 파동에도 반응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런 후에는 자연스러운 순서에 의해 아스트럴계의 거친 부분에 대한 감각도 각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곧 그보다 더 섬세한 부분도 포함될 것이며 결국은 때가 되면 순서에 의해 멘탈계의 능력도 각성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이처럼 순조롭게 능력이 계발되는 예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에테르 차원의 시각은 전혀 각성되지 않은 채로 아스트럴 의식이 갑자기 일깨워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리고 이 순조롭지 못한 각성이 투시와 관련된 문제에서 우리가 오류를 범하기 쉽게 만드는 주된 이유의 하나가 된다. 이 오류의 가능성은 자격이 갖추어진 스승의 세심한 지도를 받아 오랫동안 훈련하지 않고는 피할 수가 없다. 

신지학 문헌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스승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즉 이 물질주의적인 19세기에도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 또한 나타난다’거나 혹은 ‘발만 들여놓는다면 배움의 전당에서는 언제든지 스승을 찾을 수 있다’는 옛말이 여전히 진리임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또한 오직 그러한 가르침 아래서만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계발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서투른 투시능력자들은 자신이 보는 것의 가치와 의미를 잘못 판단하거나, 혹은 그것을 육체적 의식으로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통째로 왜곡시키기조차 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는 것을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신비력의 사용에 관해서 올바른 지도를 받는 사람에게조차도 반드시 이 능력들이 위에서 이상적으로 제시된 것과 같은 순조로운 순서대로 정확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이전에 거친 개인적 수행 과정에 비추어볼 때 이것이 반드시 그에게 가장 쉽고 바람직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하간에 그는 자신의 영적 진화를 이끌어줄 자격이 완전히 갖추어진 스승의 인도를 받고 있으며 그가 따르고 있는 길이 자신에게는 최선의 길임을 확신하고 안도한다. 

그가 얻는 또 하나의 큰 이점은 그가 어떤 능력을 얻든지 간에 그것은 완전히 자신의 통제하에 있으며 그것을 자신의 신지학 공부에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흔히 그런 능력들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제멋대로 변덕스럽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야기한 대로 투시능력이 인간이 계발할 수 있는 신비력의 일부분이라며, 또 그래서 그것이 그러한 선상의 얼마만큼의 진화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흔히 미개한 사람들이나, 우리들 가운데서도 무지하고 의식이 덜 깨인 사람들―어떠한 관점에서 보더라도 분명히 개화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 물론 이것은 처음 보기에는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미개인이나, 유럽의 세련되지 못하고 천박한 무식꾼들이 지닌 감각과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들의 능력은 사실 전적으로 질이 다르며 그 얻게 된 방법 또한 다르다. 

그 차이에 대한 정확하고 상세한 설명은 좀 난해한 전문성을 요하지만 그 둘의 차이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아마도 조밀한 물질계와 인접해 있는, 투시의 가장 낮은 차원에서 볼 수 있는 예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에텔체(Etheric double)는 육체의 신경계통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중의 어느 한쪽에 자극이 가해지면 곧 다른 한쪽이 반응을 한다. 그것이 중앙아프리카이든 서유럽이든 간에 한 미개인에게서 간혹 일어나는 에테르 투시에서는 해당 신경의 활동은 거의 전적으로 교감신경계 내에서 일어나며, 그것은 실제로 전적으로 그 사람의 지배권 밖의 것이라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즉, 그것은 분화된 기관을 통해서 전달되는 명확한 감감인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집합적인 감각으로서 에텔체 전체에 모호하게 속해 있는 것이다. 

진보된 인간의 좀더 높은 진화과정에서는 정신능력의 진화에 인간의 힘이 더욱 더 투입됨으로써 이처럼 모호한 감각은 대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그 연후에 그의 영성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그는 자신의 투시력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능력은 정확하고 틀림없는 것이며 그의 의지력의 지배를 받으며, 일정한 감각기관을 통해서 발휘된다.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 야기되는 신경활등은 이제는 거의 전적으로 뇌척수신경계 내에서 일어난다. 

이에 관해서 베산트 여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저급한 형태의 심령현상은 지적인 능력이 잘 계발된 남녀보다는 동물이나, 매우 지적이지 못한 인간에게 더 흔하게 일어난다. 그런 현상들은 뇌척수신경계가 아니라 교감신경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감신경계의 세포핵의 큰 신경절 세포들은 매우 많은 비율의 에테르 질료들을 함유하고 있어서 그 비율이 낮은 세포들보다 더 쉽게 거친 아스트럴 파동의 영향을 받는다. 뇌척수신경계가 발달되고 두뇌가 더욱 더 진화해 갈수록 교감신경계는 종속적인 위치로 전락하며, 심령적인 파동에 대한 감각은 고차원 신경계통의 더욱 활동적이고 강한 파동에 의해 지배된다. 진화의 나중 단계에서 심령적인 감수성이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은 뇌척수신경계와 연관되어서 발달되며 의지력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그러나 많은 유감스러운 예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신경질적이고 발작적인 심령현상들은 두뇌가 발달되지 않아 교감신경계가 지배함으로써 기인되는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 나타나는 투시능력은 그러한 능력의 계발 가능성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매우 지적이고 영적인 사람들에게는 간혹 나타나는 수가 있다. 이 경우 그러한 일별은 대개 그들이 이러한 능력이 저절로 발현되기 시작하는 진화의 단계에 접근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의 발현은 좀더 높은 단계의 순수성과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투시능력은 그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 

전혀 무감각한 사람과 완전한 투시능력을 가진 사람의 사이에는 다양한 중간적 단계들이 존재한다. 평소에는 투시능력을 보이지 않지만 메스메리즘 상태 하에서는 잘 발휘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흘깃 스쳐보는 정도의 구경을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심령적인 소질은 이미 각성되어 있지만 의식이 육체적 삶의 다면적인 교란 때문에 그 속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의 내면에서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신성한 능력을 각성시키기 위해서는 메스메리즘적인 트랜스 상태를 통해서 외부의 감각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킴으로써 의식을 해방시켜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물론 메스메리즘 상태에서도 그 명확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단계가 있다. 

그저 멍하게 넋이 빠져버리는 상태의 일반인들로부터 그 투시능력이 완전히 메스메리저(메스메리즘을 행하는 사람)의 지배하에 들어감으로써 마음대로 조종되는 사람, 혹은 일단 의식이 풀려나면 단번에 메스메리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완전히 그의 능력 밖의 세계인 고차원적 비전의 영역으로 솟아올라가는, 좀더 진화된 단계의 사람들도 있다. 같은 도상의 또 다른 단계는, 최면술적 트랜스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육체를 완전히 잠재울 필요가 없고 평상시에는 불가능하지만 몸이 보통의 잠 속에 빠져 있을 때 투시능력을 발휘하는 경우이다. ‘꿈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는’, 혹은 밤중에 깨어있을 때 그들보다 높은 존재들과 만나 대화하였다고 하는 경전 속의 많은 선지자와 예언자들은 바로 이러한 진화의 단계에 있었던 것이다. 

세계의 진보된 인종들 중 대부분의 문명화된 민족들은 어느 정도 이러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것은 즉, 그들의 아스트럴체의 감각들이 완전히 기능하며, 그 차원의 대상과 존재들로부터 오는 인상들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완전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이 육체 차원에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용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보통 두 가지의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에고(Ego)가 아스트럴 차원의 현실 속으로 깨어나 자신의 상념에 의해 만들어진 누에고치 속에서 벗어나와 주변을 돌아보며 관찰하고 깨우치도록 인도받아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그의 에고가 육신 속으로 돌아오는 동안 의식이 깨어 있음으로써 육신의 두뇌 속에 그가 보고 배운 것에 대한 기억이 새겨질 수 있게끔 되어야 한다. 

만일 이 처음의 변화가 일어나면 두 번째의 것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진정한 인간인 에고가 그 차원에서 얻어질 정보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그것을 육체 차원의 깨어있는 삶의 기억 속으로 가져다놓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학생들은 이 투시능력이 처음에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해서 자주 물어온다. 즉, 이러한 능력의 희미한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에 이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 너무나 차이가 많이 때문에 이 질문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대답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 번의 갑작스러운 경험으로부터 그것이 시작된다. 그리고 어떤 비상한 자극에 의해서 어떤 놀라운 비전을 단 한 번 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경험은 되풀이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그는 자신이 그 당시 허상을 보았던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또 인간의 오라(Aura)가 찬란한 색깔로 진동하는 것이 간헐적으로 눈에 보이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편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갈수록 자주 보고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써 시작하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잠들기 전에 어둠 속에서 눈앞에 어른거리는 사람의 얼굴이나 경치, 혹은 색깔을 띤 구름들을 봄으로써 시작된다. 그리고 아마도 무엇보다도 가장 흔한 경험은 잠잘 동안에 다른 차원계에서 보고 들었던 것을 점점 더 생생하게 기억해내기 시작하는 것일 것이다. 

이제 우리 이야기의 바탕이 어느 정도 명확해졌으므로 투시의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이 현상들은 그 성질과 정도의 차이가 너무나 다양하므로 그것을 만족스럽게 분류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예컨대 우리는 투시의 종류, 즉 그것이 멘탈 차원의 것인지, 아스트럴 차원의 것인지, 혹은 단지 에테르 차원의 것인지에 따라서 분류해볼 수 있다. 또는 투시자의 능력, 즉 그가 숙달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 나누어볼 수도 있다. 말하자면, 그의 투시능력이 자신의 지배하에서 규칙적으로 나타나는지 아니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메스메리즘 상태에서만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지, 아니면 그런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지, 육신 속에 깨어있을 때에도 투시가 가능한지 아니면 수면이나 트랜스 상태에 일시적으로 빠져들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인지 등이다. 

이 모든 구분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이들을 모두 고려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전체적으로 가장 유용한 것은 신넷트(Sinnett)씨가 그의 책 『메스메리즘의 원리(Rationale of Mesmerism)』(투시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필독서이다)에서 적용한 분류방식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현상을 다룸에 있어서 투시가 일어나는 차원에 따라 분류하기보다는 발휘되는 투시의 능력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제목들 에 투시의 사례들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1. 단순투시 - 말하자면,단순히 눈이 뜨임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있는 아스트럴, 혹은 에테르 질료의 물체를 무엇이든지 볼 수 있게 되는 것으로, 현재 이외의 다른 어떤 시간에 속하는 장소나 광경을 보는 능력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2. 공간투시 - 투시자로부터 공간적으로 떨어진 광경이나 사건을 보는 것으로서 보통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장애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대상을 투시하는 능력이다. 

3. 시간투시 - 시간적으로 떨어진 사건이나 대상을 보는 것으로서, 달리 말하면 과거나 미래를 들여다보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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