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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럴계 [아스트럴계] 아스트럴계의 거주자 - 사후의 일반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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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4,770회 작성일 16-08-0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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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598, Vote: 1, Date: 2004/06/26 19:21:49 , IP: 211.219.117.241
글 제 목 [아스트럴계] 아스트럴계의 거주자 - 사후의 일반인 2
작 성 자 문성호 




우리의 일반적인 공간 개념으로 이러한 아스트럴 하부계들을 연관지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기 바란다. 이들 중의 어느 한 계층에 거주하는 이른바 “죽은” 존재들은 호주든 영국이든 똑같이 쉽게 갈 수가 있을 뿐 아니라, 어디든지 문득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해도 즉시 갈 수가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탈피작업이 완료되기 전에는 어느 한 층에서 그 다음 층으로 자신의 의식을 변경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러한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다만 인간이 어느 한 층에 존재하는 자신을 의식할 때 그것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단축시키거나 지연시킬 수도 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특정의 부분계를 의식하는 정도는 언제나 똑같은 법칙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극단적인 예를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 가령, 어떤 사람이 과거 생으로부터 7번째 하부계의 질료를 다량으로 필요로 하는 습성을 가져왔지만, 금생에는 다행히도 일찌감치 충분한 교육을 받아 그러한 습성을 통제할 필요성을 깨닫고 그리할 가능성을 얻었다고 하자. 이러한 경우에도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노력이 한결같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역시 노력한다면 그의 아스트럴체 속에 있는 조악한 입자들이 느리지만 꾸준히 보다 정묘한 입자들로 교체되어갈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과정은 점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절반도 채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주인공이 임종하게 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를 아스트럴 최하부계에 오랜 기간동안 머물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질료가 그의 아스트럴체에 상당부분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그 질료는 이번 생에 그의 의식의 습관적인 매체로서 사용되거나 작용한 적이 없었다. 또한 습관이란 것은 갑작스레 몸에 배이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는 최하위계에 속하는 질료가 해체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긴 하지만 그곳에 있는 내내 무의식 상태에 있게 된다. 다시 말해 그는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잠자는 것과 같은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협화음으로부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오컬트 학도라면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아스트럴계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다. 일반 사람들은 죽을 때 항상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무의식의 순간으로부터 깨어나자마자, 욕망 엘리멘탈이 자신의 아스트럴체 질료를 재정비하여 만들어낸 어떤 여건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때 그는 엘리멘탈의 작용에 의해 가장 바깥쪽에 배치된 질료를 통해서만 외부의 파동을 받아들일 수 있고, 따라서 그의 시야는 그 특정한 하부계에 제한되어버린다. 그는 이것을 자기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활여건의 일부로 받아들일 뿐, 자기가 어떠한 한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며,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인 양 생각한다. 이것은 그가 엘리멘탈과 그것의 작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지학도라면 이러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러한 한계가 불필요한 것임을 안다. 이 앎에 의해 그는 욕망 엘리멘탈의 작용에 저항하려고 노력하며, 지상생활 동안에 소유했던 것과 같은 상태의 아스트럴체, 즉 모든 입자들이 자유롭게 운동하며 뒤섞여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의지적 노력에 의해 그는 아스트럴계의 모든 층으로부터 여러 가지 파동을 동시에 감지할 수 있고, 따라서 모든 아스트럴계가 그의 시야에 완전히 열리는 것이다. 그는 육체적인 잠 속에서 할 수 있었던 것과 똑같이 자유롭게 그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으며, 누구든지 그 사람이 어느 하부계에 갇혀있든 관계없이 찾아내어 의사를 교환할 수도 있다. 

엘리멘탈의 재정비 작업에 저항하여 아스트럴체를 예전의 상태로 복원하려는 노력은 육체를 가지고 사는 동안 강한 욕망에 저항해야 했던 것과 비슷하다. 엘리멘탈 자신은 그 나름의 특유한 반의식 상태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그 두려움을 주인공인 인간에게 전가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어떤 위기감이 엄습해 옴을 느낀다. 이때의 충동은 엘리멘탈이 재편성하려는 작업을 허락하여 그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그것이다. 여기서 그가 이 원인모를 불안을 극복해낸다면, 즉 두려워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자신의 지식에 의해 거기에 꾸준히 저항한다면, 마치 그가 지상생활 동안에 여러 차례 욕망의 부추김을 견뎌냈듯이 조만간에 엘리멘탈의 작용력을 소멸시킬 수가 있다. 이리하여 그는 아스트럴계에서 하나의 살아있는 능력자로서, 그가 지상세계에서의 수면 중에 해왔듯이 다른 이들을 도울 수가 있는 것이다. 

내친김에 말하자면, 아스트럴계에서는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존재들 간의 지식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제한 받는다. 멘탈체를 사용할 수 있는 제자라면 정신감응에 의하여 물질계에서보다 더욱 쉽고 빠르게 자신의 상념을 전할 수가 있으나, 이 세계의 거주자들은 대체로 그러한 힘을 갖지 않으며, 약간 완화되기는 했지만 역시 물질계에서의 속박과 비슷한 어떤 한계로 인하여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여 여기 아스트럴계에서도 물질계와 마찬가지로 신앙이나 언어 등의 비슷한 공감대를 갖는 자들끼리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시적인 생각은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관념이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그의 성격이나 지성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일도 거의 없고, 따라서 죽은 자들의 특성도 산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각양각색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대중적인 종교 가르침은 인간의 사후세계에 대하여 너무나 부정확하고 잘못된 지식을 오랫동안 심어왔기 때문에, 지성이 발달한 사람들조차도 아스트럴계에서 처음 의식을 회복할 때 상당히 당황하게 된다. 아스트럴계에 처음 도착해서 목격하게 되는 주위의 환경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믿음도 실제로는 거의 쓸모가 없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의식이 멀쩡하다는 그 사실을 자기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영원한 징벌이라고 하는 가르침 역시 이 정묘한 세계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을 공연히 비참하게 하고 공포에 떨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격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나서야 그 무시무시한 독설의 치명적인 영향에서 자유로워지며, 그때서야 비로소 이 세계가 인간의 고통을 즐기는 어떤 악마의 변덕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비롭고 끈질긴 진화의 법칙에 의해 유지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진화와 관련된 이러한 사실을 진정으로 깊이 있게 이해하지는 못하며, 지상생활에서도 그랬듯이 아스트럴계에서도 참다운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방황한다. 이처럼 사후의 세계에도 죽음 이전의 세계와 똑같이 자신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여 그것을 활용하고 개선할줄 아는 소수의 사람과 그렇지 못한 다수의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무지한 자는 현명한 실례와 충고에 의해서도 자신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스트럴계 존재들의 지성이 어느 정도건 간에 그것은 항시 유동적이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 지성은 양적으로 차츰 감소해간다. 왜냐하면 인간의 저급한 마음은 보다 높은 곳에서 작용하는 상위의 영성과 보다 아래에서 작용하는 강한 욕망 사이에서 양쪽으로 잡아 당겨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서로 반대되는 두 방향으로 진동하게 되는데, 위쪽을 향하는 경향이 차츰 짙어지고 낮은 욕망의 힘들은 스스로 사멸하여간다. 

바로 이 점으로 인하여 교령회 자체가 한 가지 결점을 가지게 된다. 너무나도 무지하거나 깊이 타락했던 사람이라면, 죽은 후 교령회의 모임에 참석한 진지한 사람들의 마음과 접촉함으로서 분명히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도움을 얻어 상승의 길을 밟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경우, 그 자신만의 힘으로도 아스트럴계의 낮은 층으로부터 높은 층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매를 통해 그와 교신하려는 목적으로, 자연스럽고 바람직하게 유지되고 있는 그의 무의식 상태를 깨뜨리고 낮은 층의 의식을 일깨워서 다시금 이 물질계로 그를 끌어당기는 일은 그의 진화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에 뒤따르는 위험은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즉 올바른 사람이라면 죽은 후 계속해서 자신의 본질 속으로 철수해갈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한 저급한 부분에 영향을 주거나 관여하는 일이 희박해진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전히 분리될 때까지는 새로운 카르마를 발생시킬 수도 있으며, 당면한 주제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 기록에 좋은 것보다도 나쁜 것을 첨가하기가 훨씬 쉽다. 

영매에 의해서 발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떠나서 죽은 자의 천로역정을 심각하게 더디게 할 수 있는 더욱 흔한 영향력은 바로 이승에 남은 친구나 친척들의 지나친 슬픔이다. 이승에 남은 우리는 죽은 친구와의 일시적인 이별에 대해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그토록 사랑했던 친구는 우리의 불필요한 괴로움으로 인하여 역시 상처를 입는다. 이러한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죽음에 대해 품어온 잘못된 종교적 관념과 터무니없이 부정확한 지식에서 비롯된 서글픈 결과들 중의 하나이다. 

이승을 떠난 우리의 형제가 어느 날 영광으로 가득 찬 천계에서 깨어나기에 앞서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때 지상에 남겨둔 벗들의 격렬한 슬픔과 집착에서 생겨난 파동은 거기에 상응하는 그의 아스트럴체를 자극한다. 그리하여 그는 꿈같은 행복으로부터 그가 최근에 마감했던 지상생활을 아주 빈번히 생생하게 기억하게 되고, 이것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동료를 떠나보낸 이들이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자신의 친구를 위하여 아무리 자연스러운 것일망정 어차피 본질적으로는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그 슬픔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오컬트의 가르침이 권하는 것은 죽은 자를 무조건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떠나간 친구에 대한 애정 어린 회상은 중간상태를 통과하여 천계로 향하는 그의 안전과 진화를 비는 진지한 선의로 나타날 때 진정 가치 있는 힘이 되어준다. 그러나 그와의 과거에 집착하면서 비탄에 빠져 그가 되돌아와 주기를 염원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며 유해하기만 할 뿐이다. 힌두교에서의 쉬라다(Shraddha) 의식이나 카톨릭 교회에서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는 올바른 직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저 세상으로부터 교신의 소망이 오는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죽은 자 쪽에서 자신이 남기고 온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경우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이따금 잃어버린 유언장이 숨겨진 장소를 지적한다든지 하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잘 것 없는 것일 때가 더 많다. 어쨌든 죽은 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그의 마음에 강박적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이 전달되도록 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근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식은 계속해서 물질계에 얽매이게 되고 상위의 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심령가나 그의 통로가 되어줄 수 있는 영매가 있으면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는 왜 영매를 통하지 않고는 말하거나 글을 쓸 수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어떤 상태의 질료는 보통 바로 그 아래 상태의 질료에 대해서만 작용할 수 있는데, 현재 그의 유기체 안에는 자신의 아스트럴체를 구성하고 있는 질료보다 더 밀도가 높은 질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물질계의 공기 중에 진동을 일으킨다든지 물질계의 연필을 움직일 재간이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에텔 복체에 포함되어 있는 중간 매개가 되는 질료를 빌려야 하는데, 이것은 어떤 충동을 하나의 계에서 다른 계로 즉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 사람에게서는 이 질료를 빌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반사람의 질료들은 너무 밀접하게 한 덩어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결코 분리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매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그 질료들을 즉시 분리하는 것이므로, 죽은 자는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에 필요한 질료를 영매로부터 어렵지 않게 가지고 올 수가 있다. 

적당한 영매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중개자를 이용할 줄 모를 때, 그는 자신의 힘으로 산 자들과 교신하기 위하여 서툴고 어줍잖은 노력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의 의지가 충분히 강하다면 엘리멘탈의 힘을 무모하게 작용시켜, 투석(投石)이라든가 종울림 같은 목적이 없는 현상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하여 심령가나 영매가 불려가고 그것들을 일으키는 실체가 이야기하거나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발견함으로 소동이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여기에 개입된 엘리멘탈의 힘은 전혀 다른 원인에 의해서 작용하는 수도 있으므로 항상 이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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