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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삶 [헌신의 길] 헌신의 길

작성일 16-07-3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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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우주나무 조회 2,31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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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521, Vote: 1, Date: 2004/06/26 18:44:44 , IP: 211.219.117.241
글 제 목 [헌신의 길] 헌신의 길
작 성 자 문성호 




3. 헌신의 길 



헌신의 길에서 올바른 지식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올바른 지식은 세상에 잘 봉사하기 위해 필요하다. 올바른 지식은, 지식에 의해서 얻어지는 합일과 어느 정도 다르기는 하지만, 합일이 최종목적지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만일 올바른 지식이 결여된다면,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그 봉사하고자 하는 욕망속에서 타락의 길로 갈 수 있으며, 돕고자 하는 곳에서 상처를 줄 수 있다. 지식은 완벽한 봉사를 위해서 필요하며, 완벽한 봉사는 헌신자의 삶의 정수essence이므로, 지식과 결합되지 않은 헌신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헌신의 길의 최종 목적지는 다른 모든 자아들을 통한 현현으로서 인식되어 왔던, 최상의 자아와의 의식적인 합일이다. 그들 다른 자아들의 생각은 모든 자아의 합일이 신안에서 발견될때까지 지속된다. 이 헌신의 길에서 사랑은 추진력이며, 그 사랑은 언제나 자신을 주려고 한다 - 상위의 존재들에게는 봉사를 위한 힘을 얻고자, 그리고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그들에게 봉사하고자. 참된 헌신자는 영적인 힘, 영적인 의지, 영적인 에너지를 얻고자 그들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들을 향해 얼굴을 위로 향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해방될 수 있도록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유를 나눌 수 있을때까지 아무런 해방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얻기위함이 아니라, 그들은 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득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통로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헌신의 길위에서 영혼은 언제나 상위의 빛쪽으로 향하는데, 진보하고자 함도 아니고, 빛나고자 함도 아니며, 그 빛의 초점과 통로로서 봉사하여 어둠속에 있는 존재들 위로 그 빛이 지나갈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상위의 빛이 단지 하위의 존재들에게로 전해지기를 열망한다. 

그래서, 그것이 헌신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첫번째 최고의 특성이다. 그들은 사랑속에서 끝나듯이, 사랑속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될수 있기 위해서는, 그들은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연의 영적인 측면을 깨달아야 한다. 자아를 인식하는 것, 모든 형상들은 지나가는 현현들에 지나지 않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인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헌신자들은 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그들 지나가는 현현들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것은 생명 - 모든것의 자아 - 의 하나의 영원한 근원에서 모든 단계의 진화속의 영적인 지성적 존재들인 다양한 불꽃이 나온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서 시작할 것이다. 몇몇은 지난 만반타라에서 승리를 얻었으며, 영원한 불로부터 세상속에서 빛이 되기를 준비하고 나온 강력한 영적인 지성적 존재들이다. 이들은 영적인 삶의 최상의 체현으로서, 그리고 현현된 우주의 기초로서 인식될 것이다. 헌신자들은 이러한 존재들을 그들보다 아주, 아주 높게 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니르바나를 통과하여 우리 우주의 현현들을 위해 드러나는 장소로 진전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들속에서 영적인 삶의 최상의 표현을 깨달을수 있도록, 우주가 돌보고 있고, 그리고 그와의 합일속에서 바야흐로 그자신이 신의 출발점에 있는 것을 발견한 이들 위대한 존재들에게는 그들의 최상의 영적인 위대함에 수반되는 몇가지 이름이 주어진다. 

이들 위대한 존재들로부터 무수한 계층으로 아래로 뻗어내림은 우주의 영적인 측면에서 모든 현현한 생명의 형상들안에서 영적인 지성적 존재들의 등급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의 건조자, 행성의 영, 지혜의 주라 부르는 강력한 존재를 통해서 계속해서 아래로, 그들로부터 그들 배후에 있는 신성한 빛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인류의 상위형상으로 구체화된 위대한 존재, 매스터들로 내려온다. 영적인 존재들의 점점 더 낮은 등급들이 우주전체가 이들 빛과 생명의 살아있는 형상들로 가득할때까지 아래로 내려온다. 

이 하이어라키는 인간형상의 부분을 구체화한 하나의 거대한 형제단으로 인식된다. 그러므로 길은 형제단의 실현에 있으며, 고립에 있지 않다. 헌신자들이 구하는 것은 해방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서 있는곳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존재들을 돕기 위하여 가장 높은 존재로부터 봉사의 힘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헌신의 길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지각력이 있는 창조물에 대한 사랑속에서 시작되며 우리의 생각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존재에 대한 사랑속에서 끝난다. 

이 원조자들의 형제단을 인식함으로서, 헌신자들은, 우주의 짐을 분담하면서, 공동의 짐에서 그들 몫을 떠맡으면서, 공동협력에서 사용할 더 큰 힘과 무지를 밝히는데 사용할 더 큰 지혜를 열망하면서 그들과 함께 의식적인 지원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항상 봉사하려고 노력하며, 내부의 자아는 물론 외부의 자아들을 인식할 것이다. 

지식의 길위에 있는 자들이 그러하듯, 헌신의 길위에 있는자들도 포기를 실현하지만, 그러나 그 포기는 종류가 다른 것이다. 그것은 "나는 무상한 것들에 집착함으로서 나 자신을 구속하지 않겠다. 그것들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할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지식의 단호한 포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 배후의 인류의 위대한 지원자들을 보며, 그들에게 봉사하고자 열망하며, 그들은 말리는 어떠한 것에도 상관하지 않는 자들의 기쁨에 찬 포기이다. 이들 헌신자들은 엄격하지 않게, 자유롭게 되기를 위해, 즐거이 모든 것을 그들에게 주기위해 모든 것을 그들에게 바친다. 그들은 그대가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사슬을 아마도 끊어버리듯이 욕망을 베어내지 않고, 열과 화염으로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헌신의 불속에 욕망을 태워버린다. 

그러한 봉사자는 그들이 봉사하고, 돕고, 그들의 주와의 합일과 인류와의 합일에 이르는 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므로 까르마로부터 자유롭다. 이 봉사는 정말 그들을 감각과 마음으로부터 분리시킬 것이나, 이 분리는 더 잘 봉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헌신자들에 의해 체득된 교훈이다 : 행위가 없이는 세상은 앞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행위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고 우리가 완벽히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바로 그곳에 우리가 있기 때문에 행위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신자들은 행동의 결실을 구하지 않는다. 행위에 대해 우리가 여기서 깨닫는 것은, 그들은 행위할 것이지만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생각은 봉사와 사랑의 주제에 고정되어 있을 것이며, 스리 크리슈나가 기타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내부에서 자유로이 있는한 감각들과 마음은 그들의 적절한 대상으로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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