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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과 그 메카니즘 [혼과 그 메카니즘] 5장 혼, 에테르 그리고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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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2,780회 작성일 16-07-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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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808, Vote: 3, Date: 2005/01/28 17:34:42 , IP: 220.93.126.13
글 제 목 [혼과 그 메카니즘] 5장 혼, 에테르 그리고 에너지
작 성 자 문성호




혼과 그 메카니즘: 5장 혼, 에테르 그리고 에너지 

제5장 혼, 에테르 그리고 에너지에 대한 동양적 가르침 


“그 미세함 때문에 모든 곳에 퍼져 있는 에테르는 접해 있지 않는 것처럼, 몸 전체에 위치한 혼도 접해 있지 않다. 
하나의 태양이 이 모든 세상을 비추는 것처럼, 몸 안에 거주하는 그는 모든 장field을 비춘다. 
지혜의 눈으로 장과 장을 보는 사람을 분간하는 자,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존재의 해방을 분간하는 자들은 지고의 존재에게 간다.” 바가바드 기타, XIII, pp. 32, 33, 34. 


혼과 그 표현, 즉 물리계에서 에텔체 또는 생기체를 다루는 동양의 문헌은 이 책 뒤에 있는 불충분한 참고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광범위하다. 우파니샤드와 뿌라나스 도처에는 이 가르침을 다루는 수천의 문구들이 흩어져 있다. 가장 중요한 정보원들 중에서 두 가지를 든다면 그것은 쉬브-삼히따와 샤챠끄라 니루빠남이다. 

존 우드로프 (아더 아발론) 경은 이 동양의 가르침과 혼의 발전 기법에 대한 지식을 서양에 전하려고 책을 통해 많은 일을 했다. 그는 그것을 하나씩 발표하는 형태로 대중이 가장 위험한 과학을 지나치게 빨리 이해하지 않도록 보호했다. 서양 의학과 과학에 기초하여 어떤 인도 철학자가 쓴 신비한 꾼달리니(배산트 G. 렐)라는 소책자도 진정 가치있는 것이다. 

이 과학의 위험은 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것이다. 어떤 기법을 앎으로써 사람이 생기체를 통해 작용하는 자신의 본성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의 의사들은 사람과 관련된 에너지 요소들을 점점 더 인식하고 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들이 그런 것처럼 육체가 원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지니는 전기적 성질은 필연적인 인식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서양 과학자들은 에테르와 그 운동을 인식한다. 동양의 스승들은 아까샤와 뿌라나에 대해 말한다. 양자는 모두 모든 형상에 스며 있는 활력있는 생명을 다루고 있고 그것은 에테르의 일관성, 감각성, 그리고 실존의 결과이다. 께노빠니샤드의 다음 구절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 줄 것이다. 


“위대한 힘은 비현현이요, 비형상이며, 빛을 주는 하나의 수여자, 그로부터 소리를 내는 에테르(아까샤)를 세상에 냈고, 그로부터 감지되는 에테르를 탄생시켰네. 
감지되는 에테르로부터 빛나는 에테르, 이로부터 맛보는 에테르, 그로부터 냄새나는 에테르가 생겨났네. 이들은 다섯 에테르이고 오중(五重)으로 확장했네. 
이들로부터 우주가 나왔다네. 이들에 의해 우주가 연속되네, 이들 안으로 그것은 사라지네. 이들 중에서 그것은 자신을 다시 나타낸다네.” 께노빠니샤드, “자연의 미세한 힘”에서 라마 쁘라샤드에 의해 인용 


고대 인도 문헌들에 나오는 빛나는 에테르와 현대 과학자들의 광파 사이에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라마 쁘라사드는 자연의 미세한 힘이라는 매우 흥미있는 책에서 미세한 물질의 네 가지 상태를 이렇게 나열했다. 

1. 뿌라나 또는 생명 물질 
2. 심령 물질 
3. 정신 물질 
4. 영 물질 

그리고 이 네 가지는 아까샤를 표현 매질로 사용하는 에너지의 성질들이다. 동양서를 연구하면 우리는 힘의 주관적 세계에 의해 존재하고, 활기를 얻는 물질 세계의 그림을 얻게 된다. 이는 에테르(아까샤)를 운동장으로 사용하면서 현상계에서 모든 형태, 성질 그리고 차별화를 일으킨다. 

'뱀의 힘The Serpent Power'으로부터 뽑은 다음의 인용은 물질과 에테르에 대한 동양적 가르침을 제시한다. 


“최신의 과학적인 연구는 이 원래의 물질이 과학적인 ‘물질’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질량, 무게, 관성을 갖지 않는다. 물질은 현재의 가정에 따라, 감각에 의해 알려진 ‘물질’과는 매우 다른 것에 의해 탈물질화되었고, 제거되었다. 이 궁극적인 물질은 운동 상태에 있는 에테르라고 불린다. 현재의 과학적 가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과학적인 ‘물질’이라는 것은 없다. 만약 그렇게 보이는 것이 있다면, 환상Maya과 같은 샥띠Shakti의 움직임 때문이다. 우주가 만들어낸 궁극적이고 가장 단순한 물질적 요소는 ‘에테르’라는 어떤 본체의 움직임이고 이 속에 있는 것이다. 이 물질의 움직임들은 실재적 관점으로부터 ‘물질’이라는 개념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물질은 그래서 그 형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 궁극적인 원소는 일종의 최종 분석이며, 다양한 종류의 물질의 차이들은 궁극적인 입자의 다양한 운동과 그 연속적인 결합에 의존한다. 그러한 기초적인 통일성을 얻게 되면, 한 형태의 물질이 또 다른 형태로 이전할 수 있게 된다.” 아더 아바론(존 우드로프 경), 뱀의 힘, p. 89. 


또 다른 책에서 아더 아발론은 말한다. 

“첫째로, 모든 가능한 힘들이 추가되어도 ‘물질’은 빛의 현상과 같은 많은 현상들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며, 따라서 ‘에테르’라는 물질이 존재한다는 하나의 과학적 믿음에 이르게 된다. 우주를 채우는 매질은 빛, 열, 전기, 그리고 아마도 천체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인력처럼 먼 거리에서의 운동의 방사를 파동으로 운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에테르는 ‘물질’ 이 아니라, 그와는 완전히 다르며, 보통의 물리적 의미에서 감각 기관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물질’과 비교해서 설명하려고 할 때, 어쩔 수 없는 지식의 불명확성을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에테르의 실재를 가정하면, 그 속에 잠겨 있는 ‘물질’ 체들은 그 안에서 위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사실 인도의 표현을 사용한다면, 아까샤 따뜨바(Akasha Tattvas: 아까샤의 성질)의 파동의 특성은 다른 따뜨바와 그 파생물이 존재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순전히 ‘과학적인 서양의 이론들은 그 질료인 ‘물질’과 ‘에테르’로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해 왔다.” 존 우드로프, (아더 아발론) 샥띠와 샥따, p. 167. 

“많은 사람들이 마야(환상)라는 관념을 비웃었고, 여전히 이를 비웃는 사람도 있다. 만약 물질이 충분히 확고하고, 영원하며, 실재하지 않는다면 어떨 것인가? 그러나 과학에 따르면 (물질적 존재로써) 우리는 무엇에 기초해 있는가? 그 답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 가변적인 형상으로 물질화되는 대단히 빈도가 낮은 무형상의 에너지라는 것이다... 나의 친구가 견고한 물질(빠르티바부따)의 ‘껍질’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 미세함이 발전할 때까지 점차 더 거칠어지는 과정이 계속된다.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 이것은 충분히 감각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고 어떤 방사하는 본체 속에서 우리의 눈 앞에서 분열한다.” 존 우드로프 경 (아더 아발론), 샥띠와 샥따, p. 170. 


인도의 혼을 보여 주는 많은 내용을 서양에 전달한 비베카난다는 말한다. 

“인도 철학자들에 따르면, 온 우주는 두 가지 물질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아까샤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는 편재하는 것이다. 형상을 갖고 있는 모든 것, 취합의 결과인 모든 것은 이 아까샤로부터 진화된다. 공기로 되는 것, 액체로 되는 것, 고체로 되는 것이 바로 아까샤이다. 태양, 지구, 달, 별, 혜성이 되는 것이 바로 아카샤이다. 몸, 동물의 몸, 행성, 우리가 보는 모든 것, 감각될 수 있는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까샤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파악될 수 없다. 그것은 미세하기 때문에 모든 일반적인 지각을 넘어서 있다. 그것은 거칠게 되어 형상을 지니게 될 때에만 목격될 수 있다. 창조가 시작되었을 때, 이 아까샤만 존재한다. 주기의 끝에 고체, 액체, 그리고 기체는 모두 다시 한번 아까샤로 녹아 들었으며, 다음 창조는 이와 같이 이 아까샤로부터 나온다. 

어떤 힘에 의해 이 아까샤가 우주를 형성하는가? 뿌라나의 힘에 의해서이다. 아까샤가 우주의 무한히 편재한 물질인 것처럼 이 뿌라나는 무한히 편재하는 이 우주의 현현력이다. 한 주기의 처음에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것은 아까샤가 되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힘들은 용해되어 뿌라나로 다시 들어간다. 이 뿌라나로부터 다음 주기에 에너지라고 부르는 모든 것, 즉 힘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진화된다.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뿌라나이다. 중력으로, 즉 자기magnetism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바로 뿌라나이다. 몸의 움직임으로, 신경 전류로, 사고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바로 뿌라나이다. 상념으로부터 최하위 물리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뿌라나의 현현일뿐이다. 정신적인 것이건 물리적인 것이건 용해되어 그 원 상태로 되돌아 간 때 우주의 모든 힘의 총합은 뿌라나라 불린다...” 스와미 비베카난다, 라자 요가, pp. 29. 30. 


현대적인 작가, 라마차라까는 말한다. 

“여러 가지 이론들이 이름이 지닌 위대한 원리를 오해하지 않도록, 우리는 그 원리를 ‘뿌라나’라고 부를 것이다. 이 말은 ‘절대적인 에너지’를 뜻하는 산스크리트 단어이다. 많은 오컬트 권위자들에 따르면 힌두이즘의 ‘뿌라나’는 에너지 또는 힘의 보편적인 원리이고, 모든 에너지나 힘은 그 원리로부터 파생된 것이거나, 그것의 특별한 형태로 그 원리가 현현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아메바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식물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로부터 동물의 최고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 형태에서 발견된다. ‘뿌라나’는 편재해 있다. 그것은 생명을 갖고 있는 모든 것 속에서 발견된다. 오컬트 철학은 생명이 모든 사물 속에, 즉 모든 원자 속에 있으며, 무생물의 경우에도 생명이 덜 현현한 것일 뿐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뿌라나’는 모든 것 속에,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혼 속에 있는 신의 일부이고, 그 주변에 물질과 에너지를 모이게 하는 에고와 이 ‘뿌라나’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뿌라나’는 그 물질적 현현 속에서 에고에 의해 사용되는 에너지의 한 형태일 뿐이다. 에고가 몸을 떠나면, 더 이상 통제를 받지 않는 ‘뿌라나’는 몸을 형성하는 개별적인 원자, 또는 원자 집단의 질서에만 반응하고, 몸이 원래의 원소들로 해체되고, 분해되면, 각 원자는 그와 함께 새로운 결합을 형성시킬 수 있는 충분한 ‘뿌라나’를 취한다. 사용되지 않은 ‘뿌라나’는 자기가 나왔던 거대한 우주적 저장고로 다시 되돌아 간다. 통제받는 에고와 함께, 응집이 생겨 원자들은 에고의 의지에 의해 결합된다. 

“‘뿌라나’는 일반적인 원리를 지시하는 이름으로 그 원리는 중력, 전기, 행성의 회전, 그리고 생명의 형태 중 최고로부터 최저에 이르기까지 그 어디에서나, 모든 운동, 힘 또는 에너지의 본질을 이룬다. 그것은 모든 형태를 띠는 힘과 에너지의 혼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생명을 동반하는 운동 형태를 만든다.” 요기 라마차라까, 숨의 인도 요가학, pp. 16. 17.


이 뿌라나는 그러므로 모든 형태의 일반적인 생명 원리이고, 이른바 인체의 에너지나 생명은 어떤 특이한 인간 혼이 지녀온 보편적 원리가 분화된 것이다. 

우주 내에 아까샤 (에테르)를 이용한 에너지들은 시대를 초월한 지혜에 따르면 세 가지 주요 부분으로 나뉜다. 

1. 포하뜨, 이는 기독교인들이 영으로 간주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것은 존재 의지이며, 신의 결정적인 생명 원리이다. 이 신은 우리가 모든 형상의 총합이고 모든 의식 상태의 총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신성한 목적이며, 능동적으로 작용한다. 

2. 뿌라나, 이는 의식 원리의 활동, 즉 기독교의 혼과 유사하다. 이 뿌라나는 영혼이나 생명, 그리고 물질이나 본체의 결합 결과이고, 신성한 목적을 수행하는 결합, 활기 그리고 예민함을 산출해낸다. 

3. 쿤달리니, 이는 인간 형태와 관련될 때, 물질 자체에 잠재하는 힘이다. 이것은 원자의 통합적 생명이다. 그 원자가 경험의 소주기에 참여하는 어떤 형태와도 분리되어 있다. 

샥띠는 힘 또는 에너지이다. 아더 아발론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도대체 샥띠란 무엇이고, 사물 안에는 무의식의 원리가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샥띠는 ‘할 수 있다’ ‘힘을 갖는다’는 ‘샥’이라는 어원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어떤 활동에 적용될 수 있다. 탈 수 있는 힘은 불의 샥띠이다. 이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다른 모든 형태의 힘이 나오는 근원적인 샥띠(아드야 샥띠)로 환원될 수 있다.” 존 우드로프 경 (아더 아발론), 샥띠와 샥따, p. 207. 


그러므로 이 세 형태의 에너지는 하나의 보편적인 생명의 국면들이다. 에테르를 매체 또는 활동장으로 이용하며 그로부터 모든 객관적인 형상들을 만들면서 태양계를 통해 스스로 표현된다. 그 과정은 인도 철학에 따르면 사람에게서 반복된다. 

육체는 세 번째 형의 에너지의 구성 부분들 또는 원자들로 표현된 것이며, 그 원자 에너지의 총합을 꾼달리니라고 한다. 

“말하자면 나머지 감각 모두가 저장된 센터가 물라다라 차끄라이고, 또아리를 튼 활동 에너지가 꾼달리니, 즉 ‘또아리 튼 것’이다.” 

그것은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거대 우주적 힘(샥띠)의 개별 육체적 표현이다.” 배산트 G. 렐, 신비한 꾼달리니, p. 40. 


육체 그 자체를 인간계의 몸 속에 있는 한 원자로 보면, 척추 기저 센터에 있다고 상정되는 꾼달리니 에너지는 본성 상 양의 원자핵일텐데, 이는 전자로 간주되는 다른 원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생기체, 또는 에텔체는 이른바 뿌라나라는 감각적인 활기를 부여하는 이원성인 생명 혼이 표현되는 매체이다. 이 이중적 에너지는 생기체에, 그에 따라 육체에도 두 가지 양의 센터를 갖고 있다. 하나는 감정과 감각이 집중된다고 주장되는 심장에, 다른 하나는 마음과 영적 의식이 표현되는 머리에 있다. 

렐 박사는 “적절한 뿌라나는 후두와 심장 기저 사이에 위치한다고 말한다.” 

“우빠니샤드의 사상가들은 머리보다 가슴(heart: 경우에 따라 심장이라고도 옮긴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거기에 생명의 숨이 거주한다. 다섯 개의 뿌라나와 아울러 눈, 귀, 말, 마음도 가슴에서 나온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마음의 고향이다. 그러므로 가슴은 의식적 생명의 중심이기도 하다. 잠잘 때 혼의 기관들은 가슴에 머물고, 또한 죽을 때 그들은 거기에 모인다. ‘가슴을 통해 우리는 형상을 인식한다,’ 가슴을 통해 우리는 믿음을 인정하고, 아이를 낳고, 진실을 알고, 말 또한 거기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가슴이 무엇에 기초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덧붙이면 화를 내며 대답을 거절한다. 그러나 기관들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은 가슴에 기초해 있고, 그것의 지지를 받는다. 가슴이 브라만이라는 실제적인 정의를 제외해도, 그곳은 혼의 경험적인 고향이고, 그래서 브라만의 고향이다. ‘여기 가슴 안에 한 동공이 있어, 그 속에 우주의 주님, 우주의 지배자, 우주의 장(長)인 그가 거주한다.’ 가슴은 흐리다얌hridayam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가슴 안에’ 사는 ‘자는 그’이기 때문이고 (hridi ayam, Chand. 8.3.3.) 한톨의 쌀이나 보리처럼 작다. 즉 가슴에서 창조된 것의 자아로써 뿌루샤(purusha: 보는 자)는 몸 가운데에서 1 인치 높이로 거주한다.” 폴 듀센 박사, 우빠니샤드의 철학, pp. 286, 287. 


“이처럼 후기 우빠니샤드의 수많은 문구들은 ‘가슴의 동공에 들어 있는’ 브라만을 경배한다. 우주의 아트마와 내면의 아트만의 일치는 송가. 6.8-16의 따뜨 뜨밤 아시(tat tvam asi)로 표현되고, 또한 이의 모방일 가능성이 있는 브리흐Brih. 5.4의 ‘진리 안에서 이것은 그것이다’라는 뜻인 에따뜨 바이 따뜨(etad vai tad)로도 표현된다. 동일한 공식이 시구에 덧붙여진 산문 구절 속에 있는 까트 4. 3-6. 1에서 12 번 발견된다. 까트 5.14에 따르면 최고의 지복은 이 사고의 의식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와 관련해서 까트. 4. 12-13만을 인용한다. 

1인치 높이로, 여기 몸 속에 
뿌루샤는 사는구나, 
과거와 미래의 주님 
그를 알고 있는 자는 더 이상 초조하지 않고, 
진리 속에서 이것은 그것이다. 

연기 없는 불꽃처럼, 1 인치 높이로 
뿌루샤는 크기 안에 있고, 
과거와 미래의 주님 
그것은 오늘의 그이고 또한 미래의 그라네, 
진리 속에 이것은 그것이네 폴 듀센 박사, 우빠니샤드의 철학, p. 170. 


여기서 푸루샤가 연기 없는 불꽃에 비유되는 것처럼 S'vet. 6. 19에 나오는 이 문구의 모방 구에는 그것이 연료를 소모하는 불에 비유된다. 반면 S'vet5.9에서는 내면의 아트만과 우주의 아트만 사이의 대조가 극단적으로 이뤄진다. 

머리카락 끝을 백번 쪼개고 
그로부터 100분의 1을 취해서 
혼의 크기를 판정하는 것 
그것은 불멸로 간다. 

아트만이 가슴에 있는 연기 없는 불꽃이라는 설명은 요기 우빠니샤드에서는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 형상을 한 혀의 모습으로 발전되었는데, 이것은 마한. 11.6-12인 초기의 일이었을 것이다. 폴 듀센 박사, 우빠니샤드의 철학, p. 171. 
” 

문헌들은 자아인 아트만이 가슴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로부터 그것은 혈액을 통해 생명 원리로 표현되고 있다. 혼의 본성, 또는 이성적 마음과 자아 의식적 개인은 머리에서 표현되고 그 위치에서 신경계를 다스린다. 

“최고 센터들은 대뇌피질에 위치하고, 여기에서 반응과 감각의 지식이 현현된다는 것이 이제 증명되었다. 이 센터들은 수용하고, 즉 지각하고 있고, 지시하고, 즉 감시하고 있고, 뇌의 양쪽 반구에 있는 기초 신경절basal ganglia이라는 두 가지 큰 융기부 안의 보조 센터들을 갖고 있다. 이들은 시상과 corpus striatum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 것은 주요 감각 센터에 보조적이며, 둘째 것은 대뇌피질에 있는 주요 운동 센터에 보조적이다. 일반적으로 보조 운동 센터들은 의지에 의해 어느 정도는 조절된다... 요기는 시상에 있는 부수적인 신경 센터들에 관심이 있다. 시상의 일반적인 기능은 몸의 모든 부위로부터 감각을 받아들여, 척추를 통해 중계하여 주요 센터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뇌에 있는 최고 반사 센터이고 모든 느낌이 이곳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우다나뿌라나Udanaprana라고 불린다. 자극을 받아들이는 척수 안에서 마지막으로 코 뿌리 높이에 있는 벌브Bulb라는 척수 부분으로부터 중계된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다나뿌라나를 의식적으로 조절하여 들어가고 나가는 모든 감각을 요기는 제압하고, 조절하여야 한다.” 배산트 G. 렐, 신비한 쿤달리니, p. 70. 


슈리니와사 이엔갈Srinivasa Iyengar은 다음과 같은 공식을 만들었는데, 조잡한 허무주의 학파를 제외하고는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1. 인간은 의식, 마음 그리고 몸의 복합체이다. 
2. 아트마(자아)는 의식의 본성이며 변할 수 없다. 
3. 마음은 비록 내부 기관이기는 하지만, 물질적이며 아트만과 다른 것이다. 
4.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개성적이고,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5. 이 에너지는 뿌라나이며, 마음과 물질 사이의 매개자이다. 

“인도 철학은 뿌라나를 우주의 기본적인 에너지이고 운동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뿌라나는 뿌루샤로부터 오거나, 그로부터 시작하는, 그리고 물질에 작용하는 힘으로 이해된다.(영혼의 국면-A.A.B.)” 

“동물의 에너지는 그것이 근육을 떠나 외부 대상에 작용할 때까지 모두 신경 에너지이다. 이 신경 에너지가 뿌라나라고 불린다. 서양 과학은 백 년 동안 기계적인 운동 형태로 신경 에너지를 설명하여 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동양 철학은 그러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뿌라나로부터 기계적인 운동을 설명하거나, 의식에 수반되는 에너지로부터 기계적인 움직임을 끌어낸다. 

뿌라나는 사이키콘Psychikon 심령, 즉 그리스 철학의 동물 영혼에 상응한다. 이것은 영혼과 물질 사이를 매개하고, 그들을 서로 관계맺게 하는 부류이다.” 슈리니와사 P. T. 이엔갈, 인도 철학의 개요, pp. 58.59. 


아더 아발론은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혈액, 심장, 그리고 숨과 같은 육체의 다양한 부분을 ‘혼의 자리’ 또는 생명의 자리로 지정해 왔다. 바이딕Vaidik 체계는 가슴을 의식의 주요 센터로 위치지우고 있는데, 그의 견해는 ‘마음에 세기다(take it to heart)’와 ‘암기하다(learn by heart)라는 어구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삐따의 5 가지 기능 중 하나이자, 가슴에 위치한 사다까는 율동감 있게 심장의 수축을 지속함으로써 인식 기능의 수행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인도 생리학자들이 인식의 자리로 심장을 거론했던 경향이 있었던 것은 심장의 구조를 보는 이런 견해 때문이었다. 그러나 딴뜨라에 따르면, 비록 심장도 뿌라나의 그 국면에서 지바뜨마, 또는 육화된 영혼의 자리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의식의 주요 센터들은 두뇌-척추의 차끄라들과 상부의 뇌(샤하스라라)에 존재한다.” 아더 아발론(존 우드로프 경),뱀의 힘, p. 3.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이 인간의 현상을 설명한다. 진화가 진행되면서, 물질적인 형태의 생명을 위해 양의 센터 또는 핵은 척추의 기저에 위치해 있고, 감각적이고 의식적인 인간 생명을 위한 양의 센터는 가슴 안에 있지만, 마음과 영적인 생명 원리에 대한 양의 센터는 머리에 있다는 것이 발견되고 입증될 수 있다. 

인간 내부의 센터들에 대한 동양적 가르침의 도식과 기법은 모두 증가하는 뿌라나 또는 생명 혼 에너지가 발휘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면 (육체의 자동 제어를 통해서) 영적 인간, 혼의 유산인 혼의 권능과 영적 성격을 입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방법과 수행의 목적은 혼과 의식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며, 두 가지 하위 에너지와 물질, 감각적 정신적 본성을 세 가지 에너지들 중에서 최고인, 영적인 생명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성취되면 영적인 생명 원리는 그 메카니즘을 최고 상태의 완전함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혼은 활기를 얻어 어떤 장애나 한계도 알지 못하게 된다. 물질은 하늘로 상승하게 되어, (어머니라고 불리기도 하는) 물질의 에너지인 쿤달리니 불이 결국 척추의 기저에서 머리 위로 그 위치가 올라간다고 인도인들은 가르친다. 이것은 동정녀 성모가 하늘로 승천하여 자신을 아들인 그리스도, 즉 혼 옆에 자리하게 한다는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과 뇌 의식 속에 자리잡은,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모든 자연인의 에너지를 통제하는 혼 또는 자아에 의해 의식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요가 또는 결합으로 신비적 경험일 뿐만 아니라, 생기적이거나 육체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하나됨(at-one-ment: 속죄)이다. 이것은 완전한 인간, 즉 물리적, 감각적, 그리고 정신적, 그리고 보편적인 혼과의 의식적 결합이다. 렐 박사는 말한다. 

“‘요가’라는 말은 결합 또는 융합한다는 ‘유가’라는 어원에서 파생된 것이다. 용접할 때 동일한 두 금속 조각이 열처리와 망치질에 의해 하나로 되듯이 인도 철학의 요가에서도 보편적 영혼 ‘빠라마뜨마’의 일부인 육화된 영혼 ‘지바뜨마’는 특정한 육체적 정신적 훈련에 의해 보편적인 영혼과 하나가 된다. 

요가는 상위 파동에 반응하는 마음의 능력을 고양시켜 우주에서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는 무한한 의식적 운동을 지각, 파악, 그리고 흡수하는 과학이다.” 배산트 G. 렐, 신비한 꾼달리니, pp. 13.14. 


르네 궤농은 이 결합의 결과를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한다. 

“우리가 이미 말했던 것처럼 해방 또는 결합은 똑같은 것으로 ‘상위에서’ 모든 상태들을 포섭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한 실현(사다나sadhana)이고, 존재의 온전함이기 때문이다. 이들 상태가 실제로 현현되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형이상학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영원하고 변함 없는 가능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의 단순한 효과에 의해 여러 가지 상태의 주인인 요기는 활기를 주는 호흡(뿌라나) 없이 다른 상태에서 벗어나 오직 한 상태와 관계한다. 도구가 많이 있는 것처럼, 그는 등불 하나가 심지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수의 형상에 활기를 줄 수 있다.’ 아니루따는 이렇게 말한다. ‘요기는 우주의 원초적인 원리와 직접 연계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차적으로) 공간 전체, 시간 전체, 그리고 사물 전체와 연계되어 있다.’ 다시 말해 현현과, 그리고 더 상세하게 말해 그 모든 변용된 인간 상태와 직접 연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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