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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과 그 메카니즘 [혼과 그 메카니즘] 7장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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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2,671회 작성일 16-07-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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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24, Vote: 6, Date: 2005/01/28 17:36:52 , IP: 220.93.126.13
글 제 목 [혼과 그 메카니즘] 7장 결론
작 성 자 문성호




혼과 그 메카니즘: 7장 결론 

제7장 결론 


이 책에서 우리는 심리학의 두 체계,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을 살펴 보았다. 이를 종합하면 우리는 사람이 살아 있는 영혼으로서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작용하고 있다는 완전한 그림을 얻을 것이다. 센터들이 위치한 에텔체는 미세하고 보이지 않으며, 오감의 범위를 벗어나 있고, 내분비선들과 신경계 안에서 밀도 있는 물리 영역, 즉 밀도 높은 물리적 현현의 나머지를 조절하고 있다. 

혼은 항상 거대한 실재이며, 한 생명의 표현이며, 에텔체와 밀도 높은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 속에서 특화된 센터들을 진화시키고 밀도 높은 물리적인 것에 영향을 미치는 에텔체에 영향을 미치고 그를 통해 작용하는 것은 바로 혼의 힘이다. 

서양인에게 가장 강력한 호소력을 미치는 문제는 어떻게 수술 시에 보다 큰 효율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혼인 사람은 그의 도구의 조건에 의해 수술 효율이 제한된다. 만약 혼의 중심이 분비선, 신경계 그리고 에텔체를 조정할 수 없고 적절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면, 혼으로서 사람은 그것들을 고치거나 치유해야 한다. 인간의 분비선이 적절하게 작용하지 않아도 이를 연구, 개선 그리고 완성시키는 데에 별 진척이 없는 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살아 있는 혼이기 때문이다.

의약의 사용을 통해 그리고 다른 수단에 의해 분비선과 신경 센터들에 직접 가하는 작용은 본질적으로 그 작동을 수정하는 것이고, 문제되는 특정인에 의해 원래 창조된 특정의 분비선과 신경 센터들의 최고 상태를 제한하는 것이다. 호흡, 만트라, 자세로 이루어지는 동양적 수행에 의해 영향을 맏을 수 있는 에텔체 내의 센터들도 동일하며, 더더욱 진실이다. 그러한 수행들은 대단히 위험하고, 정신 이상에 이를 수도 있다. 결국 바라건데, 우리는 여러 가지 센터들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수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연구 결과로 세 가지 이론이 분명해졌는데, 사람을 생명, 자기 의식, 그리고 지성적 목적을 표현하는 유기체로 설명하는 삼중의 가설이 형성되게 되었다. 

첫 번째는 분비선과 신경계에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 그의 기질, 자연적인 성질, 삶의 경험과 환경의 지성적인 처리는 그의 내분비계에 의해 결정된다. 서양에서는 이것을 강조한다. 
두 번째는 에너지 센터들에 의해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 인간 내부의, 즉 에텔체의 특정한 에너지 초점의 정지 또는 활동은 그의 기질, 표현 방법, 몸의 형태와 수명을 결정한다. 물리계에서 그의 활동은 센터들을 통해 흐르는 에너지의 성질에 완전히 의존한다. 동양에서는 이것을 강조한다. 

세 번째는 센터들과 아울러 분비선과 신경증은 혼이 발휘하는 조절 또는 조절 부족에 의해 조건지워진다. 우리가 물질적인 면을 모두 보이지 않고 증명될 수 없는 영역으로 내몰아갔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옳을까? 지나간 시대의 결론이 처음에는 모든 면에서 모호한 가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던가? 과거에 증명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 것이 현 시대에는 증명되었고 입증되지 않았는가? 현재 모호한 요소들을 보다 분명하게 지각하기 위해 직접 이용할 수 있는 많은 증거를 통해 적기에 충분한 방법을 채택하고 기술을 적용할 수는 없을까? 

우리가 구조에 관한 사실들을 보았던 것처럼 서양은 진보하고 있다. 사람의 메카니즘은 내분비계와 신경계, 반응 장치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이 주제에 접근할 수 있고, 사람의 분비선을 다룸으로써 인체의 완성을 꾀하여 결국 사람을 혼이 충만한 빛으로 이끌 수 있을까? 또는 센터들은 혼에 대한 표현 매체이고, 신경계와 분비선들을 통해 몸의 구성과 조절을 맡고 있다는 동양적 주장을 받아들여, 승인하기 힘든 방법을 연구, 적용하여 센터들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순전히 물리적인 접근법도 아니고 미숙하게 센터들을 깨어나게 할 위험도 피할 수 있는 제 삼의 길은 있는가? 혼이 그 도구를 완전히 사용하여 센터들의 올바른 활동이 일어나는 데에 요구되는 혼과 몸 사이의 완벽한 상호작용을 이룰 수 있는 해법과 방법을 얻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가? 

사람은 하나의 혼이며, 따라서 표현 도구, 즉 삼중의 하위 본성인 심령적 정신적 상태의 총합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을 통하면 각각의 체계 중에서 가장 좋은 측면들을 전체 인류가 이용할 수 있도록 동양의 지혜와 서양의 지식의 결합을 이뤄내는 것이 가능하다. 사람은 혼이고 몸을 갖고 있고, 하나의 에너지체를 통해 이 둘을 연결시키는 통일적인 매체가 있다는 작업 가설을 가정해 본다. 

혼이 실존하고 기관에 활기를 준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려는 사람들은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열망과 감정, 그리고 물리적 수단을 사용해 왔던 신비가들이 있고, 보다 정신적으로 순수하게 영적인 지식에 이르기 위해 지성과 마음을 사용해 왔던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장구한 계열의 신을 아는 자들은 혼을 자아, 사랑하는 자, 하나, 또는 신, 또는 그리스도 등의 용어를 사용해서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그들이 뭐라고 이름했는 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신비가는 단식과 과도한 수련을 통해 몸을 채찍질하고 학대했다. 그래서 그는 육적인 욕구를 줄였다. 여기에 사랑하는 자에 대한 강렬한 헌신과 일별에 대한 열망을 더했다. 격렬한 수행의 세월 끝에 찾았던 것을 발견하고 그 사랑하는 자와 통일되었다. 

두 번째 집단은 이성을 사용했고, 마음 조절법mindcontrol을 수행하고, 엄격한 감정적 육체적 조절을 더했다. 집중적인 탐구를 통해서 그들도 실재를 발견했고 영원한 계획의 광범위한 의식으로 들어가 보편적인 혼과의 결합에 이르렀다. 

두 집단은 모두 혼 경험의 진실을 증명하지만, 자신의 특별한 성향과 방법에 제한되었고, 그 증거는 일방적이었다. 하나는 너무 환상적이고, 신비적이며 감정적이다. 다른 것 또한 너무 학구적이고 지적이며 형구축적form-building이다. 이제, 인간 지식의 폭넓은 유포와 문헌, 대화와 왕래를 통해, 이들 간의 긴밀한 교제를 통해 최초로 융합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서양과 동양의 철학자들과 성자들의 결론으로부터 현 시대에 영적인 성취 방식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체계와 하나의 방법을 종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시작 단계를 어떻게 밟는 것이 실용적인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a) 서양의 지식을 이용한 육체에 대한 분별력있는 대우, 특히 내분비계의 예방 의학과 일반 건강과 관련해서 그러하다. 

(b) 현대 심리학과 분별력있는 심리 분석의 기본적인 사실의 지적인 이해와 적용, 그래서 혼이 표현하는 정신적, 감정적 그리고 육체적 메카니즘의 지식을 얻는다. 

(c) 육체는 욕망과 감정적 본성에 반응하고 그에 의해 조절되는 자동 기계이고, 그래서 (음식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신에 대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이 의식의 감정적인 상태는 이성적인 마음에 의해 조절될 수 있다. 

(d) 이 모두로부터 마음의 법칙에 대한 연구가 성장해서 마음과 뇌 사이의 관계가 이해되고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네 가지 요점이 파악되어 사람의 개성에서 그 효과가 느껴지면 우리는 통합적이고 협동적인 유기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구조는 혼이 지도할 준비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위의 단계들은 순차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전진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혼과 혼이 드러내는 세계의 완전히 지성적인 앎은 이 요약된 자질을 갖춘 사람에게만 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신에 대한 직감, 진실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 그리고 신비한 광경과의 접촉은 가슴 센터가 깨어나 작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가능하다. 그러한 신의 연인들은 모든 시대에 존재한다. 그들은 느끼고, 직감하고, 사랑하며 찬미하지만, 혼, 마음 그리고 머리 사이의 연결은 부족하다. 이런 신비적 자질에 지성적인 것이 더해지면, 머리 센터는 깨어나고, 송과선은 더 이상 위축 상태에 있지 않고, 혼의 자리와 지휘하는 영적 의지의 자리로 알려지게 된다. 이 두 센터들이 모두 깨어나면 인류는 성화된 가슴과 두뇌를 갖고 일하는 영적인 개성들에 대한 큰 이해를 얻게 되고, 세계적 사상에 그들은 봉인을 남길 것이다. 지금까지는 신비가들의 방식이 다수를 위한 것이었고, 지성의 방식은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인류는 이제 그 전제를 다수의 신비한 경험에 두면서 감정과 찬미로부터 지식으로, 그리고 신의 사랑으로부터 신의 지식으로 전진할 수 있다. 

이것은 동양의 지혜가 서양의 지식에 추가되고 혼의 과학의 기법이 서양의 지성적 유형에 부여되는 경우일 것이다. 이 기법을 상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이 8 단계로 나누어서 간단히 정리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 타인과의 관계의 조절. 동양의 오계(五戒)에서 규정되어 있는 무해함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오계란 무해함, 모든 존재에 대한 진실, 절도 행위 금지, 음란 행위 금지, 탐욕의 금지. 엘리스 A. 베일리, 혼의 빛, p. 184. 
이다. 

2. 다섯 가지 규칙으로 요약되는 삶의 청정함: 내적 외적 정화, 만족, 열렬한 열망, 영적인 학습과 이슈와라(신성아)에 대한 헌신. 상동, p. 187. 


3. 균형 

4. 생명 에너지의 올바른 조절과 에텔체에 대한 혼의 직접적인 활동. 이 에너지 조절과 그로 인한 센터들과 육체의 조절은 청정함과 균형이 이루어진 뒤에만 가능하다. 그는 훈련을 통해 동물적 기질의 조절을 배우고 더 이상 노여움과 이기심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시점에 이를 때까지 에너지를 다스리는 법칙에 대한 앎이 허락되지 않든다. 

5. 추상 작용. 자기 의식을 머리에 집중해서 거기서 혼으로 작용하거나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물로 나가 있는 의식을 회수해서 내면으로 돌리는 능력을 이르는 말이다. 

6. 주의 또는 집중. 이것은 한 점을 향하는 살아 있는 마음으로, 감정 대신에 활동으로 방향을 돌리게 한다. 그래서 감정적이고 육체적인 인간은 집중된 마음에 의해 조절된다. 

7. 명상은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확장된 것이며, 혼과 그 관심 사항에 마음을 집중하는 능력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유기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게 만들어 “생각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명제의 진실을 실증한다. 

8. 정관contemplation은 자기 왕국 속에서 형상들을 바라보는 혼의 행위이며, 본성 상 다섯 번째 또는 영적 왕국에서 발견되는 에너지들을 접한다. 이 행위 뒤에는 (조절된 마음에 의해서) 머리 속으로 혼의 지식과 에너지가 흘러 들어온다. 이러한 혼의 활동은 이른바 광명을 이뤄낸다. 그것은 전신을 에너지화시키고 적절한 리듬과 진보 속에서 에너지 센터들이 깨어나게 한다. 

생기체와 에너지 센터들을 통해 작용하는 이 의식적으로 지휘된 영적인 에너지는 우리가 완벽한 건강과 혼의 표현을 위해 육체와 내분비계가 결국 완벽한 기관을 갖추어야 함을 제시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은 명확한 혼의 지식에 이를 수 있으며, 명백한 목적을 지니고 그 메카니즘을 사용할 수 있는 “더 심오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배운다. 

위의 방법을 따름으로써 동서양의 위대한 신비가들, 성자들, 그리고 달인들Adepts의 삶을 연구하면 많은 환각과 정신병적 조건의 기미를 뺀 뒤에 현상적인 효과들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것이다. 여러 가지 형태의 투시, 예지 그리고 텔레파시 의사소통, 투청력과 신비화된 특별한 능력을 우리는 종종 본다. 그러나 이 모든 힘들은 자신의 영적인 현현들과 하위의 현현들도 생기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A. E. 포웰은 이렇게 말한다. 

“두 가지 종류, 즉 낮은 투시와 높은 투시가 있다. 낮은 것은 중앙 아프리카의 원시인들과 같이 미개발된 사람들에서 일어나기도 하는데, 특화된 기관을 통해 소통되는 정확하고 명확한 감각 지각보다는 에텔체 전체에서 일어나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느낌의 일종이다. 그것은 실제로 인간의 조절 범위를 넘어선다. 신경계와 지나치게 밀접하게 관계맺고 있는 에텔 복체 중 하나에 대한 작용은 다른 하나에 신속하게 반응한다. 낮은 투시에서는 상응하는 신경의 교란이 교감 신경계 내에서 거의 대부분 일어난다. 

보다 발전된 인종에서는 모호한 민감성은 정신 능력이 개발되면서 대개 사라진다. 그 이후 영적인 인간이 전개되기 시작하면 그는 다시 투시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능력은 의지의 조절 아래에서 정밀하고 정확하며 감각 기관을 통해 수련된다. 신경 작용은 뇌척추계에서 거의 전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하위 형태의 심령력은 대부분 동물과 대단히 비지성적인 인간에게 자주 나타난다. 병적으로 흥분하고 통제되지 못한 심령력은 뇌 발달과 교감 신경계의 지배가 미약하고 에텔 물질의 지나친 비대화를 포함한 신경계에서 핵을 지닌 신경절 세포가 큰 핵을 지니고 있어서 조잡한 아스트랄 파동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A. E. 포웰, 에테르 복체, pp. 102. 103. 


고양이와 개와 저급한 인간들은 정상적이고 보다 지적인 사람에게 나타날 수 없는 것을 빈번히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능력은 무의식적이고, 사람은 환각의 희생자가 된다. 이처럼 성자와 투시자도 보고 듣지만, 그들의 능력은 의지에 따라 이용되고, 완전히 조절된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모든 심령적 연구가들에게 열려져 있고, 생기체와 센터들의 전제를 받아들이면 실제적인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다. 

다양한 센터들이 깨어나면 물리적인 것보다 더 미세한 물질의 상태가 드러난다는 것을 혼의 과학을 가르치는 동양의 스승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것은 횡경막 위의 센터들이 대부분인데, 이는 자신의 동료들의 영적 지각, 정확한 이해 그리고 해석과 같은 능력을 수여하여 그리스도가 사람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와 행위하는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영감의 에너지, 즉 그 모든 것의 최상의 힘은 목 센터를 통한 창조적인 작업과 심장 센터를 통한 인도주의적 사업에 대해 영감을 준다. 

이 부류에 의해 주장되는 두 번째 효과는 횡경막 아래의 힘을 위의 센터들로 옮기는 것이다. 진화와 명상의 효과에 의해 특정한 양식의 소화 기관과 생식계와 신경 메카니즘들이 작업을 진척시킬 수 있도록, 자동적으로 몸을 에너지화시키는 정상 기능을 수행하는 세 가지 하위 센터들(척추 기저, 천골 센터와 태양총)을 벗어나 세 가지 주요 차크라들(머리, 심장, 그리고 목)에 사람은 의식적으로 작용을 가할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이 “횡경막 아래”의 삶을 살고 생명력은 순전히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삶에 집중되어 있으며, 성적인 생활과 감정적인 삶은 잠들어 있고, 천골과 태양총으로 그리고 거기를 통해 흐르는 모든 힘은 어떤 생리학적이고 하위 심령적 과정들을 자극한다. 그러나 사람이 진화하면서, 힘의 방향이 변한다. 우리는 그 힘이 이중적인, 즉 한편으로는 생명력이고 한편으로는 혼의 힘으로 하나는 혈액을 통해 표현되고 다른 하나는 신경계를 통해 표현된다는 것을 보았다. 생명력의 측면은 모든 몸의 기관과 구조를 생기있게 하고 능력을 부여하는 기능을 계속 수행해 나가지만,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정적인 혼의 힘은 위로 향하기 시작한다. 척추 기저 센터의 생명력은 차례로 각 센터를 통과하여 각 지점에서 혼의 에너지를 모아 증가시키면서 척추 통로를 통해 머리로 전달된다. 

이러한 의식 전달의 심리학적 효과는 흥미있다. 혼이 머리 안에서 (과학적인 동양의 서적들에 적혀 있는 것처럼) “옥좌에 앉아” 자기의 힘을 통해 척추 기저에 있는 힘을 끌어 올린다. 그러면 영적인 에너지와 물질 자체 내에 있는 힘이 혼의 인력 에너지를 통해 완전히 섞이게 된다. 이것은 쿤달리니 에너지가 오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혼의 지배적인 자기력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고 특정한 센터에 대한 명상이나 물질 에너지에 대한 의식적인 행위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천골 센터의 혼 에너지는 최고의 창조 센터인 목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래서 집단을 위해 발전되는 창조 작업이 강조될 것이고, 이와 관련된 사람의 활동적인 성 생활을 강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태양총 센터의 에너지는 이와 함께 심장으로 이동하여 전달되어야 하고, 의식은 더 이상 자기 중심적이지도 순전히 이기적이지도 않지만, 사람은 사람과 삶에 대한 태도에서 집단의식적이고 포용적이 된다. 그는 더 이상 적대적이고 배타적이지 않다. 그는 알고 이해한다. 그는 동정, 사랑 그리고 봉사한다. 센터와 센터 사이, 그리고 센터와 분비선 사이의 이러한 관계가 일단 파악되면 폭넓은 연구 분야가 존재하게 된다. 심령적인 효과와 아울러 생리학적인 효과는 자세한 연구를 보증할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지혜에 대하여 공부하는 학도들이 또 다른 주장을 하는 것도 흥미있다. 사람이 목 센터가 작용하는 매우 높은 진화 상태에 이르면, 세계의 일에서 자기 위치를 갖기 시작한다. 그는 세계 활동 중의 어떤 분야에서 특정한 결과를 얻는다. 그의 개성은 체계화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고, 스스로 성숙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뇌하수체는 감정과 정신적 특성의 자리라고 말한다. 한 엽lobe에 추론적인 마음이 자리하는 한편, 다른 엽은 상상적인 감정적 능력과 시각화 능력을 담당하고 있다. 창조적인 능력을 지녀서 개발된 개성을 갖은 사람의 경우에는 뇌하수체의 두 가지 엽들은 그러한 요구를 감당할 수 있고, 혼이 움직이고 표현되는 물질적 국면의 상태, 메카니즘이 그것들로부터 유래할 수 있다. 이 분비선은 미간 센터와 관련된다. 이 센터는 혼의 에너지에 반응하는 머리 센터에 음성적이다. 개괄한 기법과 일치해서 혼이 통제력을 얻어, 머리 센터를 활성화하고 위축된 송과선을 어릴 때처럼 작용하는 상태로 바꾸면, 긍정적인 국면이 그 부분을 작동시키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센터와 그 대응 센터인 뇌하수체 사이에서, 그리고 긍정적인 센터와 그 대응 센터인 송과선 사이에서는 어떤 관계가 세워진다. 시간이 경과하면, 자기장이 세워지고, 혼과 몸이 만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관계하면 혼은 사람의 의식 속에서 탄생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신의 고향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것이고, 진정한 인간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육체의 성 기관들과 그 생식 활동들은 외부적으로 구체화된 상징이다. 매우 광범위하게 만연되어 있는 성 주술의 남용은 혼과 몸 사이의 관계를 보여 주는 머리 속에 있는 두 가지 에너지 센터들 사이의 진정한 영적인 결합 또는 혼합에 왜곡을 낳는다. 진정한 과정은 머리 속에 집중된 인간 자신의 본성 안에서 진전되며, 그 관계는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신에 혼과 몸 사이에서 일어난다. 

두 가지 머리 센터와 그에 상응하는 분비선들 사이의 이러한 관계에 대해 주장하는 또 다른 효과는 둘 사이의 상호작용은 빛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그들의 빛이 나타나게 하라”는 명령을 한 것을 포함해서 세계의 경전들에는 이와 관련된 확실한 증거가 많이 있다. 신비가들의 삶에서도 산적한 증거들이 있다. 이들은 저작에서 자신들이 목격해 왔던 빛을 저작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나는 일군의 학도들에게 자신들의 일의 결과로 어떤 흥미있는 현상을 알게 되었는지를 묻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신경과민증 환자들과 몽상가적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보내지 않았지만, 비즈니스, 예술과 문학 분야에 종사하는 남녀에게 보내졌는데, 그들은 신뢰를 보내왔다. 75 퍼센트가 머리에서 빛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환각 상태였을까? 그들은 상상의 희생자들이었을까?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항상 보는 것일까? 

여기에도 흥미있는 연구 분야가 있으며, 그 결과들은 지금 과학에 의해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빛이 물질이며, 물질이 빛이라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을 것이다. 만약 혼이 작용하고 있고, 사람이 그 혼과 의식적인 결합을 이뤘다면, 관련된 특별한 자극을 통해 신체의 가장 중요한 센테, 즉 머리 센터에서 육체와 관련된 주요 점에서 에텔체의 빛을 인식할 것이다. 바조니 교수는 말한다. 

“우리는 지구 상에 있는 모든 형태의 물질이 92 개의 다른 종류의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은 모여서 분자를 이루고, 셀 수 없이 많은 것으로 결합되어 주변에서 보는 모든 체들을 형성하고, 그 물질들로 우리 몸들을 형성한다. 이제 이들 92 가지 종류의 원자 중에 어떤 하나가 과학자들이 잘 알고 있는 방식으로 자극되면, 빛, 일반적으로 색채를 지닌 빛을 방출하게 할 수 있는데, 이 빛의 본성은 92 가지 원자마다 각각 특이하고 특징적이다.” C. B. 바쪼니, 우주의 핵, p. 31. 


에텔체의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우리의 문제에 어떤 빛을 던져 주는 것인가? 동서양의 고대 그림들에서 성자들과 신의 머리 주변에 있는 후광은 예술가들이 영적인 의미만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의미에서 깨달은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예술가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이것들은 연구되어 증명되거나 논박되어야만 한다. 

혼의 제어 기법에 기초한 서양의 성취와 동양 철학에 의해 단일한 인간에 대한 설명을 찾는 두 가지 위대한 사상 학파들을 통일하는 가능성은 하나의 실험과 같다. 서양 학도가 전제로 간주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마음을 연다면, 이 책에서 제시한 논증들을 진실로 증명하거나 틀렸다고 거부하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매터링크는 다음과 같은 결과에 대해 허버트 스펜서를 인용한다. 

“능력을 최대로 신장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무익한 상상이라고 포기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헛되이 파악해 보려는 위대함을 다른 과정보다 완전히 깨달을 수 있다... 계속해서 알아내려고 하지만 앎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하면서 포기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물의 존재를 통해 그것을 알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와 최고의 의무와 똑같다는 의식을 생생하게 유지할 수도 있다.” 모리스 매터링크, 빛을 넘어서, p. 95.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전망을 어느 정도 분명하게 하고, “확신을 깊게” 하면, 우리가 “살아 있고 움직이며 존재성을 갖추고 있는” 알 수 없는 본질적인 현실을 은폐하는 형태와 측면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간 가족이든 혼의 왕국에서 시각화되고 접촉되는 형태이든, 그것이 현상 세계라는 것을 인정하면, 결국 점진적으로 (존재의 크기가 커지는) 형상들은 그 본질적인 삶에 대한 확장된 진실을 우리에게 드러내 줄 수 있다. 메카니즘이 개발되고 개선됨에 따라 우리의 신성의 개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에드워드 카펜터는 이러한 생각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위대한 저작인 황금 가지에서 프레이저 박사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자연의 법칙들은 우리가 세계와 우주의 고상한 이름들로 위엄을 갖춰 놓은, 계속 변화하는 주마등과 같은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가정일 뿐이다. 과거의 분석에서 마법, 종교 그리고 과학은 오직 (생각의) 이론일 뿐이며, 과학이 그 선구자들을 밀어내면, 그 이후 몇 가지 더 완벽한 가정에 의해, 즉 현상을 보여 주는 스크린 위에 그림자가 나타나는, 아마 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방법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나는 프레이저 박사가 ‘현상을 보는 방법’이 과학적인 방법과는 다르다고 생각한 것은 올바르다고 본다. 그러나 이 변화는 과학 자체의 성장에 의하거나 그 ‘전제들’의 확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가슴의 성장과 확장에 의해, 그리고 그 심리학과 인식력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드워드 카펜터, 이교도와 기독교 교의; 그 기원과 의미, p. 278. 


매터링크는 이것을 매우 간결하게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의 시야로부터 일광을 가리는 안개는 저지대에서만 퍼져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몸에서부터 나오는 개념들을 맑게 할 필요가 있다. 파스칼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존재의 협소한 한계들은 우리의 시야로부터 무한성을 가로막는다.’”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면) 초자연적인 것을 논박하고, 신비가와 투시가가 증언하는 주관적인 상태가 단지 자연 에너지와 힘을 증명하는 것일뿐이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 실제적으로 암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최소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힘들을 수 세기 전에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처럼 현대 문명의 영광인 그러한 힘들을 현재 인정하고 사용할 수 없다. 이 혼의 힘들 중에서 하나가 자연적인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되면 새로운 세계의 입구가 인류 앞에 열릴 것이다. 리어리 박사는 이것을 이렇게 평가한다. 

“어떤 육체적인 구조의 활동으로 설명될 수 없는 개성의 기질, 특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미신이라고 간단히 결론지워버릴 수 있는 논점도 아니다. 그것은 널리 유포되어 있고, 감정으로 꽉 차 있고, 심리학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이거나 아니거나 그러한 특성이 있다면 다시 한번 언급할 가치가 있으며, 정의 또는 가정 상 구조에 기초해 있지 않고, 가장 사소하고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을 인정하는 태도를 조금이라도 허용하면 과학의 전 분야에 불가피하게 그리고 완전히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결정론이 진정한 결정론인 것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니엘, H. 리어리 박사, 현대 심리학: 정상과 이상, pp. 191. 192. 


우선 활력있는 혼과 관련된 동양 철학도의 주장이 증명되거나 논박될 수 있는 실험실이 있어야만 한다. 죽음의 현상은 혼의 철수라는 각도에서 연구될 수 있다. 물론 인체의 빛 방사는 관심을 끌어 왔다. 척추와 에너지 센터들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빠리 솔본느 대학의 바라둑 박사가 45 년 전에 몇 가지 흥미있는 작업을 했지만, 아직 새로운 연구 분야이다. 그의 책 L’Ame Vitale은 추측이긴 하지만, 암시적이고, 그의 주장은 증명될 필요가 있다. 

생기체와 이것이 신경계와 분비선에 미치는 효과라는 주제 전체는 광범위한 연구 분야를 열어 놓는다. 인간의 에텔체와 신경 기관의 관계 뿐만 아니라 행성적 에텔체 또는 유기체로서 그 위치를 갖고 있는 에테르와의 관계는 아직 다루어지지 않은 분야이다. 

둘째로 빈번히 증명되는 머리의 빛에 대한 사실과 본질에 대해서 증거를 모으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텔레파시의 본성에 대한 최근의 두드러진 실험들은 올바른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텔레파시 기법은 아직 유치한 단계에 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의사소통 사이에 구분이 생기면 많은 것이 드러날 것이다. 앞의 것은 정신적 텔레파시이지만, 혼과 혼, 그리고 혼과 뇌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신은 훨씬 더 드문 것이다. 이 후자의 형태는 영감이라고 불려 왔고, 세계의 경전들과 이른바 “영감을 받은” 저술들로 나타났으며, 위대한 발명가와 과학자들, 시인들과 예술가들의 정신적 과정들을 인도해 왔다. 

텔레파시와 영감은 빛 그 자체나 라디오처럼 개별적인 인간 에텔체와 이것이 우주적 에텔체와 맺는 관계에 의존적이다. 그들은 영혼과 혼의 더 미세한 세계를 증언한다. 
새로운 개혁이라는 책의 맺음말에서 푸핀은 이렇게 말한다. 

“이 초물질적인 물질의 의미를 우리가 해독하려고 시도할 때 혼의 창조력은 유일한 안내자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혼을 다른 사람의 혼과 비교하고 하위의 동물의 혼과 비교하는 가장 믿을 만한 기준을 제공한다. 양적인 측정의 과학적인 방법들을 어느 정도 닮은 이러한 비교는 문명이 시작된 이래 계속되어 왔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연구 절차는 관찰, 실험 그리고 계산에 의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상응한다. 그것이 정밀성이 부족한 것은 주의깊은 비교 고찰에 의해 여러 세기 동안 정성적qualitative 측정을 하면서 생겨난 엄청난 시행착오들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혼이 동물 혼에 비해 훨씬 더 우월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차이가 몸 구조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는 일반적인 판단에 이르게 된다. 또한 비교에 의해서 다른 모든 차별화된 요소들 위에 우뚝 솟은 한 가지 요소가 드러났다. 그것은 영적인 요소였다. 인간 혼의 창조력은 인간 의식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는데, 그것이 바로 영적 세계이다.” 미카엘, 푸핀, 새로운 개혁, pp. 264, 265. 


가능성이 있는 다른 연구 분야로는 인간의 오라aura에 대해 킬르너 박사가 작업을 진전시킨 것이 있다. 그는 이것을 인간의 분위기라는 책에서 구체화했다. 비범한 힘에 대해 많은 계열들의 연구를 독자들을 위해 잘 요약해 놓은 것으로는 피더랄 인디펜던트라는 호주의 정기간행물에 나오는 최신의 글이 있다. 이로부터 두 문단을 인용한다. 

“아인슈타인의 최신 상대성 이론을 연구해 온 과학자가 최근에 그리스도가 물 위를 걸었던 사건을 새롭게 조명했다. 연구 결과로 H. H. 쉘던은 회의주의자들이 오랜 동안 조롱해 왔던 성경의 이야기가 과학적 법칙으로 설명 가능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기적은 회의주의적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상대성 역학의 법칙과 전기 법칙은 하나의 공식으로 환원될 수 있고, 전자기 힘이 중력에 영향을 미쳐, 이를 완전히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라고 셀던 교수는 말했다. 아인슈타인의 최근 수학 이론에 따르면, 오직 하나의 본체가 있으며, 전기 및 중력 성분을 포함하는 하나의 보편적인 법칙이 있고, 양자는 모두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친다. 이제 이러한 발견이 이루어진 결과로써 비행기를 엔진이나 물질적인 지지 없이 고도를 유지시키고 창에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공중에서 걸어나오는 일들이 쉽게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연구 분야라고 셀던 박사는 믿고 있다. ‘만약 이 이론이 전기와 중력이 사실상 같다는 것을 증거로 세운다면 우리는 실제로 중력 에너지로부터 우리 자신을 격리시킬 수 있다’고 그는 선언했다. 이러한 믿을 수 없어 보이는 가능성의 실제적인 증거로 쉘던 박사는 자기에 민감한 퍼멀로이(니켈과 철의 합금) 막대기가 자석 밑에 놓이면 어떻게 공중에 혼자 매달리게 되는지를 들었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이론적 조명으로 발이 물 표면에 닿자마자 밑으로 가라앉게 하는 중력 법칙에서 그리스도가 자유로웠던 것은 몸 속에 막대한 양의 전자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이것은 그의 개성과 생명력으로부터 솟아나는 어떤 에너지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모든 그림에는 머리 주변에 후광이 그려져 있다. 한때 이 후광은 그의 사도들이 과도하게 상상한 결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심령 현상을 연구한 많은 학도들과 함께 과학은 모든 인간에게 어떤 강력한 전기 기계에서 방출되는 발광과 흡사한 후광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실제적인 실험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과학이 영적인 일들과 물질적인 것을 구분짓는 경계선을 급속히 관통하고 있다는 진전된 증거이다. 일단 상위 법칙의 지식은 하위 법칙들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진정한 영적인 유산으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종교가 과학적인 근거에 서게 될 그 날의 여명을 고대하고 있으며, 푸핀 박사가 덧붙여 말한 것처럼 여러 시대 동안 목격한 진실들이 증명되고 입증될 것이다. 

“그렇다, 신의 영적인 현실들은 볼 수 없지만, 형성되어 있는 물리적인 사물들 속에서 드러나는 물리적 실재에 의해 설명되고 이해될 수 있게 된다. 사도의 말에 대한 이런 해석에 따르면 물리적인 현실과 영적인 현실은 서로를 보완한다. 그들은 동일한 현실의 두 가지 극단terminals으로, 한 극단은 인간의 혼 속에 거주하며 다른 것은 외적 세계의 사물 안에 있다. 과학과 종교가 왜 서로를 보충해야 하는지 기본적인 이유 한 가지가 여기에 있다. 그것들은 신성이 거주하는 세계로 인간 혼이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두 개의 기둥이다.” 미카엘 푸핀, 새로운 개혁, p. 272. 


그때 새로운 능력, 새로운 이상, 신과 물질에 대한, 생명과 영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지닌 새로운 인종이 출현할 것이다. 그 인종을 통해 그리고 미래의 인류를 통해 메카니즘과 구조와 아울러 그 메카니즘을 사용하여 그 자신의 본성, 즉 사랑, 지혜 그리고 지성을 나타내는 혼, 즉 본체도 알게 될 것이다. 

과학은 이 궁극적인 가능성을 알게 되었고, 진화 과정의 경향은 형상과 생명 사이의 보다 완벽한 적응을 향해 가는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 왔다. 모든 창조를 통해 모든 곳에서 한 가지 목적이 작용하고 있으며. 완벽을 향한 의지가 현현하고 있다. 그 목적과 의지는 사랑과 지혜에 의해 조절되고 그 두 가지 형태의 에너지, 즉 영혼의 목적과 혼의 견인력은 물질 측면의 완성에 지성적으로 적용되어 있다. 영혼, 혼 그리고 몸의 성스러운 삼개조(triplicity: 삼위일체)는 세계 속에서 풍부한 심상, 색채, 형태로 현현하고, 세계의 경전 속에서 인류를 위해 표현된 완성을 향해 모두 전진해 갈 것이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브라우닝의 환상과 묘사는 우리의 연구 결과를 요약해 줄 것이고, 이 글을 끝맺는 데에 어울릴 것이다. 

“-그리고 신은 새롭게 하시니 
고대의 환희를. 그래서 모든 것 속에 살고, 
생명의 순간적인 시작으로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사람에게는 이 계획의 완성 
존재의 그것, 그의 특성들은 여기로 그리고 저기로 
가시적인 세계 도처에 흩어졌으나, 
결합되기를 청하였네, 희미한 단편들이 원했으니 
어떤 경이적인 전체 속에서 결합되기를 
불완전한 성질이 창조를 모두 경과하여 
하나의 피조물을 만들자고 제안하여, 
이 모든 흩어진 광선들이 만나야 하는 어떤 점 
사람의 능력 속에 수렴되는... 
모든 종족이 똑같이 완성될 때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모두가 인류를 향해 
그리고 그 목적을 만들어 저 멀리 두었네 
그러나 완성된 인간 내면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신을 향한 성향. 예언은 말했으니 
사람의 근접함을, 그래서 사람은 자아 속에서 일어나 
8월의 대망, 상징, 유형들 
희미한 광채 중에 계속 전진해 가는 
저 영원한 원 속에서 생명은 추구하네. 
사람들이 자기 본성의 경계를 통과하기 시작하여 
확실히 바뀐 새로운 희망과 돌봄 발견하고 
적절한 기쁨과 슬픔, 너무나 크게 자라네 
옳고 그름의 편협한 신조, 사라지고 
측량하기 힘든 선에 대한 갈증 앞에, 평화 
그들 내면에서 점점 더 상승하네.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지구에 있구나, 
평온히. 반쯤 이룬 피조물들의 라운드 가운데에” 로버트 브라우닝, 파라켈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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